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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잡초들의 전략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 2024년 7월
평점 :
잡초는 ‘밟혀도 밟혀도 다시 일어난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런 이미지 때문에 “잡초 같은 정신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잡초처럼 끈질기게 버텨야 한다.”라고 말하며 ‘노력’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잡초의 실제 모습은 다르다. 사실 잡초도 밟히면 일어날 수 없다. 한 번 정도는 모르지만 몇 번을 계속해서 밟히면 일어날 수 없다. 밟히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잡초의 진짜 모습이다. 이 모습에 어쩌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이래서야 잡초의 정신을 내세우기도 민망하다. 하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잡초의 강인함이다. p.25
보통 잡초는 바라지 않는 곳에 자라나는 식물이라고 정의된다. 다시 말하면 방해가 되는 풀, 즉 훼방꾼인 것이다. 하지만 길가에 핀 이름 모를 풀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훼방꾼'이라고 여기면 그저 그런 잡초일 수 있지만, 그것이 이제껏 본 적 없는 가치를 지닌 식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잡초는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기도 한 것이다.
길이나 밭, 공원 등 인간이 만들어낸 곳에서 자라는 잡초, 사실 이런 곳은 자연계에는 없는 특수한 환경이다. 그러니 잡초란 쓸모없는 식물이 아니라 '특수한 환경에 적응하고 특수한 진화를 이룬 특수한 식물'인 것이다.
매일 물을 주는 화단의 화초들까지 시들어버리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아무도 물을 주지 않아도 길가의 잡초들은 싱싱하게 잘 자란다. 그 이유는 뭘까. 아스팔트 틈새나 보도블록의 경계 같은 장소에서도 잡초는 꽃을 피운다. 재미있는 것은 잡초를 흔하고 하잘것없는 식물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잡초가 어디서나 자라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잡초는 각각 자신 있는 장소에서 자란다. 풀이 자주 베이는 장소에는 자주 베여도 자신 있는 잡초가 자라고, 잘 밟히는 장소에는 밟히는 데 자신 있는 잡초가 자란다. 풀베기를 당하는 장소의 잡초는 생장점이 낮고 풀베기를 당해도 충격이 적은 형태를 띠는 것들이 많고, 잘 밟히는 장소에서 자라는 잡초는 줄기를 옆으로 뻗거나 잎을 땅바닥에 붙여 펼치는 식으로 밟혀도 충격이 적은 형태를 갖춘 것들이 많다. 역경을 기회로 이용하는 잡초의 전략은 그들의 놀라운 생명력과 연결된다.
사실 잡초는 식물 도감에 기재되어 있는 것과 다른 생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 봄에 핀다고 씌어 있지만 가을에 피거나 1미터 정도의 키로 자란다고 쓰여 있지만 10센티미터 정도에서 꽃을 피우는 경우도 있다. 잡초는 그야말로 제멋대로인 식물이다. 그러나 잡초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잡초는 예측이 어렵고 변화가 심한 장소에서 자란다. 그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환경에 맞추어 자유자재로 변화한다... 당연한 모습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잡초는 강하다. p.178~179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척박한 곳에서 홀로 싹을 틔우기 위해 다양한 생존 전략을 구사하는 잡초들은 다양한 전략을 통해 자연계에서 살아남은 위대한 식물인 것이다. 잡초는 진화 과정에서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존재들이다. 곤충이 찾아오지 않는 환경도 있었고 동료로부터 고립되어 딴꽃가루받이를 할 수 없었을 때도 있었다. 그런 상황들 속에서도 잡초는 살아남기 위해 환경의 변화들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켜왔다.
일본의 대표적인 식물학자이자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인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쉽고, 재미있게 식물학에 대한 풍성한 지식들을 풀어내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을 기회로 바꾸고 살아남기 위해 도전하고 분투하는 잡초들의 지능적인 전략들을 정리했다. 바랭이, 금방동사니, 애기땅빈대, 개미자리, 둑새풀 등 처음 이름을 듣는 식물도 있었고, 광대나물, 민들레, 닭의장풀, 달맞이꽃, 질경이, 제비꽃, 갈대 등 익숙한 식물들도 있었다. 조용한 생존경쟁의 비밀, 서로 보탬이 되는 윈윈 전략, 불안전한 환경을 이겨내는 발아 전략,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진화 전략,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응 전략이라는 5개의 카테고리로 식물들을 분류해 알아보기 쉽도록 했고, 내용 자체도 어렵지 않고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대부분 밭이나 정원에서 발견되는 낯선 식물들을 발견하면 사람들은 이걸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녀석을 없애면 다른 녀석이 자라날 공간이 넓어질 뿐이다. 그야말로 잡초는 식물계의 깡패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민들레가 정원을 소유한 어른들에게는 없애버려야 할 꽃으로 인식되는 것처럼, 잡초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개념'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인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잡초들의 생명력에 주목해 그들의 놀라운 센스와 수완을 배울 수는 없을까라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이 책을 써냈다. 애기땅빈대에게 위만 바라보지 않고 옆으로 뻗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배우고, 개미자리를 통해 무엇이 내게 가장 소중한지를 돌아보고, 살갈퀴에게 달콤한 보상을 준비해 조력자를 고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광대나물에게는 머리 좋은 상대를 선별해서 손을 잡는 수완을 배우는 식이다. 그래서 이 책은 식물학 책이지만, 일종의 자기계발서처럼 읽을 수도 있다. 치열한 생존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잡초의 전략을 통해 그들처럼 현명하고 다양한 우리만의 생존 전략을 만들어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