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제임스 - 문명의 한복판에서 만난 코스모폴리탄 클래식 클라우드 32
김사과 지음 / arte(아르테)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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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읽거나 설명하기 까다로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기필코 감춰져야 한다. 랠프는 절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이사벨에게 돈을 건넬 수가 없다. 왜? 직접 손을 대는 것은 일을 망치는 것뿐이니까. 왜?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이런 자연스러움에 대한 집착은 그들이 가진 은밀한 지배욕, 감추어진 권력에 대한 열망을 보여 준다. 그들은 여러 사정으로 본인들의 권력의지를 현실에서 이루는 데 실패했다.           p.51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그 서른 두 번째 작품이다. 서른 두 권 중에서 서너 권 빼고 전부 다 가지고 있는데, 그만큼 너무 좋아하는 시리즈이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수백 년간 우리 곁에 존재하며 '클래식'으로 남은 세계적 명작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는 작품들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거장의 흔적을 따라서 그가 태어난 곳부터 마지막 눈감는 순간까지의 여정을 직접 여행을 통해서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도로 해주는데, 이번 여행의 가이드는 김사과 작가이다. 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은, 오직 자신만의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라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이라는 작품을 떠올려 보면 어쩐지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사과 작가가 헨리 제임스의 작품을 처음 만났던 건 대학교 1학년 몹시 칙칙했던 겨울이었다고 한다. '헨리 제임스라는 지루한 이름을 가진 소설가의 <아메리칸>이라는 멋대가리 없는 제목의 소설을 읽었다'는 문장에서 첫 만남이 어떠했는지는 짐작이 간다. 하핫. 얼마 뒤 그는 헨리 제임스라는 이름을 완전히 잊었고, 이후 109년 가까이 다시 만날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조금 쉽게 읽히는 <여인의 초상>을 만났고, 좀 더 난해하지만 세련된 매력의 <나사의 회전>도 읽게 된다. 그리고 그의 후기 걸작이라는 <비둘기의 날개>를 펼쳐 들었는데, 그 책은 읽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 책은 책상 한편에 놓인 채 그를 불편하게 했는데, 마침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제안을 받게 되었고, 작가를 고를 때 만약 헨리 제임스에 대해서 쓰기로 한다면 적어도, 저 책은 끝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시리즈에서 자신이 선택한 거장에 대해 찬사와 애정을 밝히고 있는 다른 저자들에 비해 상당히 신선한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말이다. 





한 인간의 일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장 중요한 일들은 어떤 조건들이 우연히 다 맞아떨어지는 짧은 시기에 몰아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헨리 제임스에게는 램 하우스에서의 몇 년이 바로 그 시기였다. 그곳에서 지내면서 헨리 제임스는 오랫동안 길러 왔던 수염을 밀어 버린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가의 섬세해 보이는 동그란 얼굴은 이때 이후의 것이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둥근 턱선과 목덜미는 날카로운 눈과 대조를 이루며 소설가의 사려 깊고 복잡한 내면을 암시하는 듯하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소설가는 마침내 자신의 얼굴을 찾았다.          p.151


사실 헨리 제임스의 작품은 <나사의 회전>, <여인의 초상> 그리고 단편집에 수록되었던 단편 몇 편 읽어본 게 전부라 이번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헨리 제임스의 여러 작품들을 소설가의 눈으로 다시 읽어보는 특별한 기회였고,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에 정착하여 삶의 대부분을 보낸 그의 삶을 수많은 현장 답사의 풍경과 사진 자료들을 통해 대리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사과 작가는 지난 몇 년 동안 헨리 제임스의 생애와 작품들의 발자취를 쫓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제임스라는 엄청나게 정교하게 축조된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한두 개를, 그것도 엉망으로 지저분하게 뜯어낸 정도인 듯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만큼 헨리 제임스의 작품들은 수월하게 읽을 수 있을 만하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통해서 그가 태어난 곳부터 시작해 뉴욕, 파리, 런던, 그리고 영국 본토인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끝에 자리한 작은 마을 라이에 이르는 여정을 함께 따라가다보면 어렴풋이 알 것도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다. 


위대한 거장의 흔적을 따라 실제 그 곳의 공기를 마시며, 직접 보고, 느끼는 여행은 가이드가 누구냐에 따라 그 분위기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바로 그 점이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매력이고 말이다. 소설가의 경우, 그의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소설가가 가이드를 할 경우에 그 여정은 더욱 특별해지기 마련이다. 김사과 작가가 읽고 해석하는 헨리 제임스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그의 삶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여정과 함께 잘 어우러져 그 어떤 문학적인 비평보다도 더 헨리 제임스의 작품을 읽는데 도움이 되어주었다. 텍스트 안에서만 존재하던 거장의 실체를 직접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보고 싶다면, 문학을 입체적으로 읽어내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거장의 작품들과 그 이야기가 탄생한 배경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체험해보고 싶다면,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만나보자. 특히나 완벽하게 설계된 미로 같은 헨리 제임스의 작품들이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면, 꼭 이번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먼저 읽어보길 적극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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