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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을 사냥하는 여자들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이나경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4월
평점 :
화석은 분명 특이한 즐거움을 준다. 생물의 잔해이다 보니 누구나 화석에 매료되는 건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래전 죽은 사체를 손에 쥐고 있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게다가 지금 세상의 생물도 아니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먼 과거의 생물이다. 그래서 나는 화석에 끌리면서도 비늘과 지느러미가 뚜렷한 화석 물고기 수집을 더 좋아한다. 매주 금요일에 먹는 생선을 닮아서 현재의 일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메리 애닝과 그 가족을 처음 접하게 된 건 화석 때문이었다. p.25
<진주 귀고리 소녀>, <뉴 보이> 등의 작품으로 만났던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미번역 작품이 출간되었다. 영국의 화석수집가이자 고생물학자인 메리 애닝의 일대기를 소설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메리 애닝은 ‘공룡’이라는 말이 생겨나기 무려 30년도 더 전에 최초의 어룡 화석을 발견하고, 다윈의 진화론에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상 가장 과소평가된 과학자이자 최초의 고생물학자라고도 불리는 메리는 열두살의 나이에 어룡 화석의 두개골 부분을 최초로 발견했고, 스물넷에 거대 수장룡 플레시오사우루스의 완전한 골격을 최초로 발견했으며, 스물아홉에 익룡 프테로사우루스의 온전한 골격을 최초로 발견, 그리고 서른에 상어와 가오리의 특징을 모두 가진 멸종 물고기의 화석을 최초로 발견했다.
하지만 당시만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런던지질학회의 회원이 될 수 없었으며,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칠 수도, 심지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그 어떤 과학 단체에서도 공식적으로 여성이 활동할 수 없는 시대였기에, 그녀의 놀라운 발견들은 모두 남성에 의해 발표되어야 했다. 2010년에 이르러서야 영국왕립학회가 과학사에 길이 남을 10명의 영국 여성 목록에 메리를 선정했으며, 현재 런던자연사박물관에는 메리 애닝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화석 사냥꾼 메리와 화석을 수집했던 엘리자베스, 두 여성의 우정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현대로 다시 불러온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이야기 자체는 허구의 작품이며, 실존 인물이 다수 등장하지만 소설가의 개입으로 만들어진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소설로서의 매력도 충분한 작품이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처럼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은 없다, 메리. 네가 아는 건 독학으로 배운 것이고 책이 아니라 경험에서 온 거지만, 그렇다고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너는 표본을 가지고 많은 시간을 보냈어. 해부학을 공부하고 그 종류와 섬세한 차이를 봤다. 익티오사우루스가 우리가 상상한 그 무엇과도 다른 독특한 존재인 것을 알아봤지."
하지만 나는 나나 화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별이 너무나 많아서 셀 수 없었다. 그 숱한 지식 아래, 땅에 누워 있는 내 자신이 아주 작게 느껴졌다. p.269
노동자 계급의 가정에서 태어난 메리는 교회에서 배우는 읽고 쓰기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뼈와 화석에 대해 궁금한 게 너무 많았기에, 책을 빌려 읽고 과학 연구 보고서를 베껴쓰고, 자신이 찾아낸 것들을 그림으로 옮기고 설명을 빼곡히 적어 넣기도 했다. 오빠와 함께 바닷가와 절벽을 탐험하며 조개껍데기며 화석들을 찾아 판매하고 수집했다. 가파른 절벽과 험한 산도 기어올랐고, 절벽 아래 묻혀 있던 고대 지층을 발견했으며, 어떤 위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메리가 수집한 뼈들은 대부분 수집가들에게 판매했는데, 먹고 살 돈을 마련해야 하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끊임없이 탐구하고 연구했던 메리 덕분에 고생물학이라는 학문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스스로는 과학자라는 인식도 없었고, 시대적으로 인정받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이 작품은 실존 인물의 일대기를 그리면서도, 나이대와 배경이 완전히 다른 두 여성의 우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어 굉장히 드라마틱하다. 서로 협력하고, 때론 경쟁하기도 하면서 특별한 우정을 이어간 메리와 엘리자베스, 두 여성의 연대가 이 작품을 정말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이 작품에는 원서에 없는 네 점의 화석 삽화가 실려 있다. 작가와 저작권사의 허가를 받아 한국어판에 특별히 수록한 것으로, 작품 안에서 주요하게 등장하는 화석들을 클래식한 펜화 스타일로 작업해 그려 넣어 더욱 의미가 있는 판본이 되었다. 겉표지를 벗겨내면 속표지와 표지 안쪽 면에 모두 화석 도감이 수록되어 있는데, 굉장히 아름답다. 19세기 사회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매력이고, 화석처럼 평범하지 않은 것에 관심을 보이는 재능있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도 아주 흥미로웠다. 뛰어난 두 여성 과학자의 찬란한 삶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