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깊고 아름다운데 - 동화 여주 잔혹사
조이스 박 지음 / 제이포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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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 이야기는 대상화되는 여성들의 유형이 어떠한지, 여성들이 대상화라는 작용에 어떻게 반응하며 어떤 반작용을 일으키는지 보여준다. 백설공주의 어머니 왕비와 계모 왕비, 백설공주는 모두 대상화된 여성들의 원형이다. 계모 왕비가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 평가를 거울에 의존하는 것은 거울이 가부장 권력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외모로만 존재의 가치가 오롯이 매겨지는 심사대에 고분고분 오르는 여자들의 삶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p.31~32


왜 동화 속에 등장하는 용은 어린이나 아저씨나 아줌마는 잡아가지 않고, 아가씨 또는 공주만 잡아갈까? 그리고 왜 기사나 왕자는 공주를 구하러 가는 걸까? 용과 공주, 기사가 거듭 등장하는 유형의 이야기는 왜 생겨난 것일까? 전래 동화 혹 여주인공들은 왜 모두 곤경에 빠지는 것이며, 그들은 집을 떠나면 죄다 숲으로 간다. 빨간모자는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숲을 지나가야 하며, 백설공주는 계모를 피해 숲으로 도망쳤다. 


영어교육전문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조이스 박은 바로 여기서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모든 이야기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그리고 지금 21세기의 우리에게 전래 동화는 무슨 의미인지, 숲으로 간 여주인공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 부모의 욕망을 투영한 백설공주부터 숲으로 들어가는 여자의 이야기인 <빨간 모자>와 <아름다운 바실리사>, 그리고 <끔찍한 용>, <데이지 공주와 수수께끼 기사>, <라푼젤>, <미녀와 야수>, <늑대와 여우> 등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온 동화들이 담고 있는 깊이 있는 메시지를 읽어 낸다. 





동양의 이야기에서는 청동 거울이 자주 등장한 다. 고대에 청동 거울은 방울과 함께 샤먼의 주술 도구였다. 그 시절에는 거울이 가지고 있는 주술적인 힘, 현실을 비추어 환상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힘, 그렇게 현실을 바꾸는 힘을 실제로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청동 거울에 깃든 힘은 다른 힘을 바탕으로 한다. 청동 거울은 유리 거울과 달리 매일 정성스레 닦아야 이미지를 비출 수 있다. 이렇게 매일같이 닦으며 쌓아가는 기원의 힘이 주술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꿈을 현실로 불러와 현실을 바꾸고 싶은 자, 자신의 참모습을 비추어 보고 싶은 자는 청동 거울을 닦듯 매일매일 마음을 닦아야 한다.               p.172


사회에 깔려 있는 여성 차별의 구조적인 기제를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하는 저자는 여성을 대상화시키는 서구의 로맨스 이야기부터 짚고 넘어간다. <신데렐라>에서 의붓언니들이 발가락이나 발뒤꿈치를 잘라 유리 구두에 발을 맞추는 것처럼, 어떤 이미지로 이상화되면 여성들은 그 이미지에 못 미치는 부분을 잡아 늘려 맞추거나, 관련 없는 부분을 잘라내 왔다는 것이다. 여성은 개인으로서의 남성에 의해 감정을 투사 당하는 성애의 대상으로 그려져 왔고, 이는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대상화되는 여성들의 유형에 대해 고스란히 보여지고 있다. 왕비는 가부장 사회의 요구에 순응하는 전형적인 예이며, 백설공주는 남자들이 바라는 욕망을 모두 투사해서 태어나, 그 욕망을 고스란히 구현하는 존재이다. 


저자에 의하면 여성은 용감하고, 제멋대로인가 하면 신비한 능력과 깊은 지혜가 있으며, 용처럼 제멋대로인 야성과 파워를 함께 지닌 존재이다. 하지만 가부장제가 자리를 잡던 시절, 용맹하고 제멋대로인 여자는 필요 없었기 때문에 예쁘고 여린 여린 공주의 모습만 그려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되었고, 더 이상 여자가 공주로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 될 수 없다. 이 책은 전래 동화를 새롭게 해석하여 여성의 성장과 역할, 가부장 권력에 대한 고찰, 현대 사회에서의 성별에 대한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다. 숱한 옛날이야기의 주인공이 숲으로 들어가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끊임없이 읽히고, 탐구되고, 추구되며, 창조되는 이야기의 힘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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