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욕 - 바른 욕망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히로키는 생각했다. 다이키가 지금 하는 짓은 살아가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얻고 누릴 여러 사회적 연결 고리를 스스로 끊어 내는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사회적 연결 고리란 곧 억제력이다. 법률로 정해진 선을 넘으려 하는 인간을 어떤 형태로든 그 선 안에 머물게 해 주는 힘이라고. 하지만 그 연결 고리는 학교나 회사라는 일상적인 길에서 벗어 나는 순간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그 안에 있으면 마치 석양처럼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연대감을 직접 두 손을 뻗어 움켜쥐고 가야만 한다.              p.150~151


이 작품의 제목인 <정욕>은 正欲, 즉 '바른 욕망'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바른 욕망이란 무엇일까. 그다지 긍정적으로 쓰이지 않는 단어인 욕망에 바르다는 표현이 붙으니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궁금했다. 올바른 욕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사이 료는 이 작품에서 바르지 않은, 사회적인 시선으로 볼 때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욕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올바르지 않은 것을 욕망하며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고독과 절망에 대해 보여주면서 '바른 욕망'이라고 정의된 개념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검사인 히로키에게는 등교 거부 중인 아들이 있다. 근속 연수와 상관없이 이삼 년마다 계속 전근을 다녀야 하는 업무 적은 특수성 속에 아들이 희망한 사립학교에 합격했다는 이유로 집에서 통근할 수 있는 범위에서 지켜냈는데, 정작 그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이후 등교 거부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검사 생활을 해오면서 인간이 걸어야 할 평범한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기에, 히로키는 아들이 학교로 돌아가길 바랐다. 하지만 아내인 유미는 억지로 학교에 보내는 게 정답인지 모르겠다고, 학교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아이의 생각에 더 힘을 실어주고 싶어 한다. 다이키는 우연히 본 유튜브 동영상 속 소년의 모습에 힘을 얻어 학교에 가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말하지만, 히로키가 보기에는 아들이 정말 바른길로 가고 있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점점 히로키는 아내와 아들과 소통하는 길에서 멀어지게 되는데, 이들 가족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세상에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것도 정말 많은데."

이름도 모르는 이웃의 생활 소음이 어렴풋이 들려온다. 

인간은 결국, 자기밖에 모른다. 사회란 궁극적으로 좁은 시야를 지닌 개인들의 집합이다. 그런 주제에 늘 한 줌의 인간들이 모든 인간에게 다른 형태로 주어진 욕구의 형태를 정한다. 

"그 덕분에 우리 같은 사람은 도망 다닐 수 있잖아."            p.319


침구 전문점에서 일하는 나쓰키는 타인과의 인간관계에 관심이 없다. 함께 일하는 쇼핑몰의 건너편 매장 직원이 휴식 시간마다 말을 걸어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나쓰키에게는 남들과 다른 욕망이 있었는데,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타인이나 사회와의 연결’을 최대한 멀리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적당히 그들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면서 관계를 유지한다. 마음이 불편하지 않으려면 이 세상의 흔해 빠진 인간 형태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애당초 자신은 세상이 설정한 커다란 길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는 나쓰키의 삶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갈 수 있을까. 한편 대학생인 야에코는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오빠가 보던 동영상으로 인해 남자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남자 친구가 있어 본 적도 없고, 가족 이외의 남성과 어떤 관계를 개인적으로 맺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시선이 무섭지 않은 남자를 알게 된다. 과연 야에코는 첫사랑에게 자신있게 다가갈 수 있게 될까.


이 작품은 이렇게 검사인 히로키, 침구 전문점 직원 나쓰키, 대학생 야에코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이들의 삶이 연결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그저 살아가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얻고 누릴 여러 사회적 연결 고리를 스스로 끊어 내는 사람들과 학교나 회사라는 일상적인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사회적 연결 고리 안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것이 세상이다. 이 작품은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조차 끌어 안기 힘든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파격적이지만,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들의 욕망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 자체는 분명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 물론 상식을 뒤엎는 욕망에 대해 공감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울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누구와도 연결될 수 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욕망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도대체 ‘바른 욕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2023년 이나가키 고로, 아라가키 유이 주연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니, 영상 버전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