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문,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
최재봉 지음 / 비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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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일들에 비할 때 작가는 상대적으로 고도의 자율성을 지닌 직업이다... 작가는 온전히 자신의 판단과 결정으로 작가가 된다. 자유와 독립이 글쓰기의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 되는 까닭은 이런 배경 때문일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작가에게 어떤 글을 쓰라고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칙적으로 작가는 자신이 쓰고 싶고 써야 하는 글을 쓸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쓰고 싶을 때 쓰고 쓰기 싫으면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그런 행복한 작가도 없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작가와는 무관한 얘기다. 작가 역시 쓰고 싶지 않아도 써야 할 때가 있다.              p.55~56

 

소설 제목에 얽힌 이야기 중에는 흥미로운 일화들이 많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는 원래 작가가 생각한 제목이 '광화문 그 사내'였는데 출판사에서 너무 장난스럽다며 난색을 표하자 '칼과  길'을 대안으로 제시했고, 이번에는 너무 무겁다는 의견이 있어서 편집자가 내놓은 절충안 '칼의 노래'로 낙찰이 되었다는 사실. 김영하의 경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자살 안내인'이라는 기괴한 직업을 지닌 이를 화자로 등장시켰는데, 제목이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말에서 왔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서 영향을 받은 제목들도 많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폭풍우'에서, 윌리엄 포크너의 <소음과 광란>은 '맥베스'에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은 '아테네의 타이먼에 영향을 받았고,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영어판 제목 '지나간 일들의 기억' 역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일부 활용한 것이다.

 

이렇게 제목에 얽힌 재미있는 배경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이 작품은 독자를 사로잡는 첫 문장의 비밀,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들, 글쓰기의 마지막 단계인 퇴고 과정 등 문학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 책에는 작가와 작품의 내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파트 1, 기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문단 문제를 다룬 파트 2, 고전과 현대문학을 잇는 각각의 주제를 다룬 파트 3와 작품 안팎으로 문학을 구성하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다룬 파트 4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문학을 탐독해온 저자의 내공이 돋보이는 광활한 세계가 네 가지 파트로 구분되어 담겨 있다.

 

 

 

작중인물이 작가의 의지를 벗어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례는 뜻밖에도 드물지 않다. 문학이 강자보다는 약자에게 더 공감하는 예술 장르인 까닭일까. 작가들은 종종 강자인 작가 자신보다는 약자라 할 작중인물을 역성드는 작품을 내놓고는 한다. 이탈리아 작가 루이지 피란델로의 희곡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에서는 연극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자 연습 중인 연출가와 배우들을 '등장인물' 여섯 사람이 찾아온다. 이들은 어느 극작가가 자신들을 탄생시키고서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며, 연출가와 배우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로 연극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며 그들 앞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연극을 '공연'하기까지 한다.              p.216

 

30년 동안 한겨레신문 문학 담당 기자로 일해온 저자가 지금껏 문학의 발자취를 따라 직접 취재하고 연구하며 기록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최재봉의 탐문'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칼럼을 개고하고 미공개 원고를 추가하여 엮었다. 제목과 문장, 작가의 생활과 작업실, 마감과 퇴고 등 작가들의 속사정을 살펴보고 독법, 문단, 해설, 문학상, 표절 등 기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현대 문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첫사랑, 모험, 복수, 팬데믹 등 고전과 현대문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들을 짚어보고, 작중인물, 부캐, 독자, 편집자 등 문학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문학작품들을 읽으면서 맛본 즐거움과 행복의 경험을 담은 글들이 '탐닉'의 의미라면 문학의 이면과 비밀을 파고든 글들이 '탐구'의 의미로 '탐문'이라는 큰 제목 아래 함께 묶였다.

 

일주일이면 수십 권에서 백 권에 가까운 문학 도서가 책상 위에 쌓이는, 문학 담당 기자의 삶이란 어떤 걸까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신간들 속에서 읽고 소개해야 할 책들을 골라내는 일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일을 무려 30년 동안이나 해온 저자의 탄탄한 내공이 이 책 여기저기에 포진되어 있다. 기자로서의 전문성과 독자로서의 애정이 모두 담겨 있는 글들이라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문학 전문 기자의 날카롭고 집요한 30년 탐독을 아우르는 대장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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