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선거의 해, 꼭 읽어야 할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18년 10월

오늘날 민주주의는 그렇게 죽어가고 있다. 파시즘과 공산주의, 혹은 군부 통치와 같은 노골적인 형태의 독재는 전 세계적으로 점차 종적을 감추고 있다. 최근에는 군사 쿠데타를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폭력적인 권력 장안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국가가 정기적으로 선거를 치른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다른 형태로 죽어간다. 냉전이 끝나고 민주주의 붕괴는 대부분은 군인이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의 손에서 이뤄졌다... 오늘날 민주주의 붕괴는 다름 아닌 투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p.10~11

이태원참사에 대해 '아무도 책임 안졌다'는 발언을 보도한 것에 대해 중징계를 추진중이라는 기사를 봤다. 마치 군부독재 시절에 '그런말 하면 잡혀간다'는 식의 그것과 뭐가 다른가 싶었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니... 정권에 의한 언론탄압이야말로 민주주의 사망 선고와도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민주주의가 처한 위험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해는 우리나라의 총선을 비롯해서 전 세계 약 76개국 42억 명 이상의 인구가 투표장으로 향하게 되는 '슈퍼 선거의 해'이다. 미,중 패권 싸움의 격전지인 대만의 총통 선거,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대결이 유력한 미국의 대통령 선거, 그리고 일본의 차기 총리를 선출하는 선거와 5선에 도전하는 푸틴이 무난하게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러시아의 대통령 선거, 유럽연합의 의회 선거 등이 있다. 그러니 2024년이 앞으로 인류의 역사를 결정짓는 데 매우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바로 이런 시기에 꼭 필요한 책을 만났다. 리커버로 새롭게 견고한 양장으로 출간된 정치학의 고전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이다. 하버드대 교수이자 정치학자인 두 저자는 오늘날 민주주의 붕괴는 다름 아닌 투표장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군사 쿠데타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폭력적인 권력 장악이 아니라 선거로 시작된 민주주의 붕괴는 '합법적'이기에 더욱 위험하다고 말이다. 이 책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독재자들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주의 제도를 직접적으로 허물어뜨리지는 않았다고 해도, 그의 규범 파괴는 분명히 그러한 일을 했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의 표현대로 트럼프는 "대중의 삶의 기반을 이루는 행동 기준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공화당은 이러한 규범 파괴 행위에 대해 오히려 그를 대선 후보로 지명함으로써 보상을 안겨다 주었다. 취임 후 이어지는 트럼프의 규범 파괴는 미국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대통령의 행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거짓말과 속임수, 탄압 등 예전에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겨졌던 행동들이 점차 정치인의 전술적 공구함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p.243~244

이 책은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매우 유사한 패턴으로 무너졌다고 말한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지도자, 민주적 절차를 거쳐 당선된 대통령이나 총리가 권력을 잡자마자 그 절차를 해체해버리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를 비롯해서 조지아, 헝가리, 니카라과, 페루, 필리핀, 폴란드, 러시아, 스리랑카, 터키, 우크라이나에서도 선거로 추대된 지도자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전복했다. 일반적인 쿠데타에 의한 민주주의 붕괴가 즉각적이고 뚜렷한 형태로 일어나는데 반해, 선거를 통한 붕괴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방식으로 서서히 허물어진다. 시민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투표를 하고, 선출된 독재자는 민주주의 틀을 그대로 보존하지만, 그 내용물은 완전히 갉아먹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두 저자는 트럼프의 당선 이후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험해 처하게 된 현실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위기에 처한 것은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러 나라의 민주주의를 파멸로 몰아갔던 치명적인 실수를 배우고, 그들이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에 맞서 어떻게 저항했는지, 그리고 민주주의 붕괴를 막기 위해 어떻게 뿌리 깊은 양극화를 극복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민주주의 붕괴는 필연적인 것도, 되돌릴 수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잠재적 독재자는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 선출된 독재자는 어떤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며, 독재자가 집권하기 전까지 어떤 징후들이 나타나는지 살펴보고, 민주주의 붕괴 조짐을 알리는 명백한 신호들을 찾아내 패턴화한다. 이 책을 통해서 민주주의 위기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다면, 조금 더 진지한 마음으로 투표소를 향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에 대처할 방안에 대해서도 다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