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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
이이지마 나미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3월
평점 :
촬영 현장에서 정신없이 요리를 완성해나가는 와중에 찡해지는 일도 있었다. 단순히 피와 살이 되는 것, 맛만 좋은 것이 요리는 아니구나, 때로 맛과 냄새로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을 불러오는 것이 요리로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그러고 보니 요리란 참 좋은 것이네요. 원작가 아베 야로 씨도 현장을 방문해 돈가스덮밥을 맛보고 좋아하셨다. 만화책에서 이 장면을 읽을 땐 상상도 못 했떤 일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 칭찬 못지않게 항의도 더러 받았다. 심야식당인 만큼 방영 시간대가 심야인지라 '한밤중에 배가 고파져서 아주 곤란하다'는 원망 아닌 원망을 심심찮게 들었다. p.30~31
영화 <카모메 식당>,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남극의 쉐프> 등과 드라마 <심야식당><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등 많은 작품에서 활약해 온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미에의 첫 에세이집이다. 바나나 튀김, 시나몬 롤, 태국풍 닭고기 전골과 미얀마 샐러드, 돈지루와 따뜻한 채소 등 소박하면서도 마음에 오래 남는 음식의 46가지 레시피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각각의 작품이 가진 세계관 속에서 상황에 맞춰 가장 잘 어울리고, 맛있는 장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촬영 현장 안팎의 에피소드들은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이야기라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영화가 크랭크인하면 감독, 카메라, 조명,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담당 등 거의 전원이 매일 일하지만,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요리가 나오지 않는 날은 기본적으로 휴일이 된다고 한다. 그럴 때면 촬영지 근처의 맛집 순례를 나서기도 하고, 현지의 요리 교실에 가기도 하며, 준비해야 하는 음식을 위한 견학을 가기도 한다. 태국의 바나나 튀김 노점에서는 뭔가 대충대충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게 천천히 튀기기 때문에 식어도 파삭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호텔 근처의 미얀마 요리 전문점에서 먹어보고 너무 감동해서 만드는 법을 물어 열심히 받아 적어와 현장에서 활용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드라마 <심야식당>에 대한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다. 당시 예산이 풍족하지 않아 아이디어와 절약이 요구되어 기존에 열심히 모았던 그릇 소품들을 창고에서 끄집어내 활용하기도 했고, 버터라이스를 배우가 여러 번 먹을 때 조금이라도 물리지 않게 먹을 수 있도록 변화를 주기도 했다고 한다. 심야식당의 돈지루 레시피는 생각보다 간단해서 언제 한번 직접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현장은 라이브 감각이다. 아무튼 현장 상황을 보면서 임기응변으로 대응해야 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에노시마 식당에서 했던 촬영이 특히 인상에 남는다. 전갱이 튀김에 소스를 뿌려 한 입 먹는 장면을 몇 테이크나 거듭 찍어야 했다. 한 스무 번은 되지 않았을까. 갓 튀긴 전갱이 튀김을 내놓아야 하므로 '지금 튀길까?' '아직 빠른가?' 등등 분위기와 상황을 봐가며 타이밍을 가늠한다. 식재료도 무한정은 아니라 마냥 낭비할 수 없다. 제작진 쪽에서는 다섯 회분쯤 준비하면 된다고 했지만, 이상적인 신이 나올 때까지 계속 찍다 보면 모자랄 가능성도 있다. 내 나름대로 눈치껏 최적의 타이밍에 내놓을 수 있게 튀긴다. p.153
촬영 준비를 하면서 있을 법한데 없는 것이 실은 꽤 많았다고 한다. 당연히 있겠거니 했는데, 막상 필요할 때는 쉽사리 발견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검정 손잡이가 달린 빨간색 프라이팬, 하면 바로 이미지가 떠올려질 정도인데, 찾아보니 의외로 전혀 없어서 백화점, 슈퍼마켓, 잡화점부터 도매상가 거리까지 며칠을 뒤지고 다녔다는 거다. 그러다 무심코 들어간 소박한 잡화점에서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쓴 빨간 프라이팬을 딱 발견했다고 한다. 그 평범한 걸 찾느라 얼마나 애가 탄 줄은 아무도 모르는 채로, 영화 현장에선 평범한 이미지의 소품으로 잘 활용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배우 얼굴이 잘 보이게끔 약간 큰 식빵을 구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사치스러운 돈가스덮밥을 위해 전체가 금색인 금색 그릇을 만드느라 따로 주문 제작까지 했다고 하니 세상에 결코 쉬운 일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저자는 현장 속도에 맞춰 정신없이 요리를 완성해나가는 와중에 요리란 단순히 맛만 좋고, 피와 살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때로 맛과 냄새로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을 불러오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기도 하고, 보통 촬영은 해당 식재료의 제철이 오기 전에 진행하기 대문에 시장에 나오지 않은 식재료를 확보하느라 고생하기도 한다. 한번은 판타지 소설이 원작인 드라마 일을 하는데, 가공의 나라의 가공의 요리를 고안해내느라 동서고금의 요리책을 전부 뒤져가며 작업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밖에 영상 속 힐링 음식의 탄생 비화, 출장지에서의 맛있는 식도락 이야기 등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저자의 음식처럼 정겹고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차 있어 기분 좋은 마음으로 읽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소울푸드를 발견한 적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그 현장 속 생생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