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요약 금지 - <뉴요커> 칼럼니스트 콜린 마샬의 변화하는 한국을 읽는 N가지 방법
콜린 마샬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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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국어의 ‘마이너’한 지위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영어에 의존하는 산업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왔다. 그런 한국 사람들에게 미국 대중문화의 가장 핵심적인 행사에서 한국어를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말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고 듣는 것은 얼마나 고무적인 일일까? 서구권 사람들이 영어보다 한국어를 더 존중하는 듯한 모습은 또 어떨까?            p.118

 

작가이자 유튜브 크리에이터인 마크 맨슨이 최근 한국 여행 영상을 올리며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국가를 여행했다'고 해서 화제였다. 그는 국내에서도 <신경끄기의 기술> 등의 책으로 꽤 사랑받은 작가인데, 이번 발언 덕분에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자살률 1위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우울증에 대한 그의 분석이 전부 틀렸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겨우 며칠 여행하고 평가한 그의 시각으로 한국을 규정해도 되는 걸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때마침 그에 대한 반박이라도 하듯 거침없이 진짜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나왔다.

 

서울에 3650일째 거주하며 <뉴요커>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콜린 마샬의 <한국 요약 금지>이다. 그는 겉핥기식 관찰과 단정적인 시선으로 판단하는 한국이 아니라, 매순간 변화하고 달라지는 한국의 모습을 직접 겪어 보고, 살아 보며 탐사한 것이다. 김치의 나라, 삼성의 나라, 자살의 나라, BTS의 나라 한국. 이런 단어들 속에 진실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 말들은 실제 한국의 복잡하면서도 모순적인 현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의 모습은 한국인들 대다수가 무심코 지나쳤을 법한 것들과 익숙하다는 이유로 이제까지 깨닫지 못했던 순간들을 담고 있다. 게다가 이 책의 제목처럼 한국은 한두 마디의 말로 요약할 수 없는 나라라는 점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어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질문을 가끔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이방인의 입장이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고 대답한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사회를 보면 모든 것이 훨씬 더 흥미로워진다. 매일 들리고 보이는 표현이나 광고와 같이 사소한 것들도 그 사회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쉬운 예로 한국이든 해외든 오늘날의 히트곡들이 나에게는 단조롭거나 유치하게 들릴 때가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21세기의 K-팝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21세기의 한국에 대해 알려주는 가장 뚜렷한 지표가 된다.              p.198

 

커피숍 테이블 위에 개인 물품을 내려놓음으로써 내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심지어 그 물건은 비싼 것들이다, 동네에 한두 개 이상의 스타벅스가 들어와도 소규모 체인 커피점이나 작은 커피숍이 밀려나지 않는다, 고등교육기관과 병원을 포함해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다, 주류가 가득 찬 냉장고를 경비원도 잠금장치도 없이 외부에 두는 편의점,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사회계급의 차이를 특별히 느낀 적이 없다. 아무도 젠트리피케이션을 이유로 커피숍 유리창을 깨지 않는다, 그리고 포장마차, 떡튀순, 서울 우유 등등... 이는 저자인 콜린 마샬이 '서울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43가지 이유'로 꼽은 것들의 일부이다. 그는 스타필드 라이브러리가 개관한 이후 그곳을 여러 번 방문했고, 겨울서점 유튜브를 즐겨 보며, 한국어 공부를 위해 이동진의 빨간 책방 공개 방송이 진행되는 카페에 가기도 했다. <우리말 겨루기>와 <한국기행> 방송을 즐겨보며, 홍상수의 영화를 주목한다.

 

'당신이 알던 K는 여기 없어요.'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이 주는 위안’, ‘<강남스타일>이 열어젖힌 문’이라는 글을 기고하며 한국을 향한 전 세계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소해줬던 그는 '한국 전문가'보다는 '한국 코노셔'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코노셔(connoisseur)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는 데 집중하기보다 관심과 흥미를 꾸준히 유지해 더 잘 감상하려는 사람을 의미한다. "K-팝과 성형수술, 북한의 위협처럼 외신이 주로 다루는 소재 정도로만 한국을 알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내가 관찰하고 만난 한국을 새롭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는 웬만한 한국인들보다 더 한국인스럽게 한국에 대해 배우고, 즐기고 있다. 외부의 기준과 평가를 너무 의식하는 한국인들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알고 있던 한국이 전부가 아니라고, 한국을 섣부르게 요약하려는 시도는 의미없다고 말이다. 이 책을 통해 한국의 다른 오늘을 발견하고 새로운 내일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한국의 오늘을 깊고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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