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보니, 진화 - 변한 것, 변하고 있는 것, 변하지 않는 것 33한 프로젝트
이권우 외 지음, 강양구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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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 : 인간은 생명의 세계에서도 필멸성을 거부하는 유일한 존재죠.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사실은 우리는 유전자의 탈것일 뿐이에요. 유전자가 영원한 것이죠. 그런데 오직 인간만이 이 유한한 탈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영원성과 불멸성을 추구하는 이야기를 창조하고, 그것에 영향을 받아서 끊임없이 필멸성을 거부하는 삶을 살아왔죠.             p.75


33한 프로젝트는 도서 평론가 이권우, 천문학자이자 과학책방 갈다 대표 이명현, 펭귄 각종과학관장 이정모, 올해 환갑을 맞은 세 사람의 삶을 반추하는 의미에서 기획되었다. 어크로스, 사이언스북스, 생각의힘 세 출판사가 <살아 보니, 지능>, <살아 보니, 진화>, <살아 보니, 시간>이라는 책을 각각 출간했다. 이 책들은 뇌과학자 정재승, 진화학자 장대익, 물리학자 김상욱이 교양 과학계의 세 어른을 만나 나눈 진솔한 대화를 담고 있다. 먼저 만나본 것은 어크로스에서 나온 <살아 보니, 지능>으로 정재승 교수와 함께 뇌과학과 지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책이었다. 노년과 나이 듦에 대하여,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에 대하여 흥미로운 질문과 현명한 대답이 오가는 대화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 읽었다. 노화란 것이 단순히 뇌가 쇠퇴하는 과정이 아니라 지식을 활용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임을 보여준다는 점과, ‘나이 듦’에 따른 신체적 정신적 변화에 따른 삶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도 굉장히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이번에 두 번째로 읽어본 것은 <살아 보니, 진화>로 진화학자 장대익과 함께 진화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장대익 교수의 첫 번째 질문은 "35년 정도 일하면 어떤 느낌이에요?" 였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사회적인 역할은 거덜 났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고, 예순이 되니 되게 편해지고, 겁도 없어진다고, 여유가 생겼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평생 80퍼센트만 하면서 가능한 한 책임을 맡지 않은 삶을 살았는데, 60대가 되는 즈음에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무거운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대답도 있었다. 특히나 건강하게 예순을 맞았다는 것에 감사한다는 대답이 인상적이었는데, 건강할뿐더러 그동안 꾸준히 책을 읽어 왔기에 새로운 정보가 나올 때 쉽게 소화해 낼 수 있는 연습을 해온 셈이라 뭐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도 예순이라는 나이의 긍정적인 부분이라는 거였다. 세 분 모두 각자 다른 영역에 있지만 공통적으로 과학과 책의 사랑꾼이라는 부분 때문인지 서로 공감되고, 이해되는 부분이 많아 대화 자체가 너무도 흥미진진했다. 





이정모 : 진화는 뭘까요? 진화의 전제 조건은 멸종이에요. 지구에서 자연 선택으로 또 다른 진화가 가능하려면 우리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사라져야 해요. 옛날 생명체가 멸종하면서 우리가 등장할 때까지의 진화는 긍정적이었지만, 지금 우리가 멸종 위기에 처하는 일은 피해야 하잖아요. 저는 공룡을 좋아하지만, 그들과 같이 살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요. 그들이 멸종했기 때문에 우리가 등장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좋은 일은 우리가 지구에서 사라지는 일을 피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전쟁을 피하는 게 핵심이에요.             p.167~168


'진화'라는 키워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도부터 더 흥미로워지는데, 우선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종의 진화를 위해서 개체의 죽음은 필수이니 말이다. '개체에게 있어 가장 불행한 이벤트가 그 종 전체가 장기 지속하기 위한 진화에 꼭 필요하다는 사실이 아니러니'하지만 말이다. 자살과 존엄한 죽음에 대해서, 안락사와 세대론에 대해서 이야기가 진행되다 인류 최초의 욕망인 영생과 불멸에 대해 이야기로 흘러간다. '진화'에 대해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2부에서는 '진화'라는 키워드가 내게 온 순간, 진화가 내게 의미 있게 각인된 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죽음에 집착했던 사춘기 때 진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고, 과학사와 과학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대학원 초창기 때 실존적인 고민에 휩싸이기도 했다고 말이다. 


진화라는 생물학적 개념부터 초고령화 사회, 종교와 신앙, 기후 위기와 인공 지능의 대두 등 이들의 대담은 그야말로 사방으로 뻗어져 나가면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대화 형식 그대로 수록한데다 페이지수가 많은 것도 아니라서 가볍고, 부담없이 술술 읽을 수 있지만, 담고 있는 내용만큼은 굉장히 시의성 있고, 통찰력 있고, 깊이가 있어서 여러 번 다시 읽고 싶은 책이었다. 현재 살고 있는 인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약 80억 명이고, 지구의 인류는 모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새로운 종으로 다시 갈라지거나, 아예 다른 종으로 진화할 수도 있을까. 새로운 질문이 생겼다. '진화'라는 개념이 어렵게만 느껴졌다면, 이 책 속 대담을 통해서 조금 더 친근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간결하고 명쾌하게 이해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호기심이 생기는 부분도 나올 수 있고, 무엇보다 진화가 지루하거나 딱딱한 개념이 아니라 쉽고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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