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마거릿 렌클 지음, 최정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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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죽음을 토대로 번성한다. 그러나 봄 햇살 속에 가만히, 아주 가만히 있어 보아라. 그러면 잿빛머리 박새 한 마리가 당신의 머리칼을 거둬 모으러 다가올 것이고, 그것으로 새끼를 위한 부드럽고 따뜻한 둥지를 만들 것이다. 담쟁이덩굴이 집 한쪽 면을 기어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아라. 그러면 어느 날 핀치 한 쌍이 담쟁이 잎사귀 사이에 균형을 잡고 자리한 작은 둥지에서 새끼들을 달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건 정확히 그들이 원한 바로 그것일 것이다.             p.38~39


파랑새 가족이 창문 바로 밖의 둥지 상자에 정착하기를 수년째 기다리는 중이었다. 마침내 알 하나가 흔들리기 시작하며 부화의 신호를 보여준 이틀 뒤, 알 다섯 개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자연에서 유혈극이 빈번히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과 그 유혈극을 몸소 겪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시인이자 수필가인 마거릿 렌클은 말한다. 집굴뚝새는 자기 영역에 들어온 작은 새들을 죽이고, 어치는 다른 새들의 새끼를 잡아먹지만 자연은 그 누구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포식자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백만 년 동안 진화한 본능을 따르고 있을 뿐이니까 말이다. 렌클은 그렇게 아름답고도 무심한 자연과 야생 생물들을 바라보면서 삶에 관한 지혜를 배운다. 


집 열뜰에 굴뚝새들이 영역을 만들고, 얼마 되지 않아 찾아온 박새들이 알을 낳고 새끼 박새들이 부화한다. 부모 박새들은 새끼들을 먹이려고 계속 일하지만, 깃털이 다 난 새끼 박새는 머리에 상처가 난 채 죽어 있다. 야생의 새들에게 물과 먹이와 거주 공간을 제공하며 돌보던 렌클은 귀여운 새끼 박새를 죽인 갈색 집굴뚝새도 미워할 수가 없다. 집굴뚝새들이 부르는 노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이고, 그들 역시 거센 바람과 퍼붓는 비와 포식자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했으니 말이다. 햇빛이 가득한 수련 연못을 보며 물 위에 둥글게 뜬 수련 잎들을 보다가 연못이 죽어 가는 중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빽빽하게 자라는 수련이 빛과 산소를 차단해 연못을 질식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지 않아 물고기나 개구리, 뱀이나 거북이가 살아갈 공간은 없어지고 오직 연못 끝에서 저 긑까지 온통 수련만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아름답게 피고 향기로운 수련꽃들을 바라보며 렌클은 자연의 아이러니를, 산다는 것의 절박함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 인간은 기쁨을 위해 만들어진 생물이다. 우리는 모든 증거에 맞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비통함과 외로움과 절망은 비극일 뿐이라고. 그리고 그 비극적인 것들은 세상의 바른 길들이 제공하는 지면, 다시 말해 우리 존재가 굳건히 디딜 단단한 지면을 만들어 내는 즐거움과 침착함과 안전함의 불운한 변이에 불과하다고. 우리는 동화 속에서 우리 자신에게 말하고 있고, 어둠은 선물 비슷한 것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우리가 늘 느끼는 것에는 그 자체의 진실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진실은 아니다. 어둠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 약간의 선량함을 숨기고 있다. 예기치 않던 빛이 반짝이기를, 그리하여 가장 깊은 은닉처에서 그것을 드러내기를 기다리면서.              p.261~262


외할머니가 들려주신, 내 어머니가 태어날 때의 이야기부터 사랑하던 개 이야기, 내가 걸음마를 배우던 아기였던 시절의 기억,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혼식, 어머니의 어린 시절 안식처였던 다락방, 내가 여섯 살 때 알던 것들과 여섯 살 때 알지 못하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 등등 한 사람의 생에는 아주 수많은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글들이 친근하면서도, 다정하게 펼쳐지고 있다. '네 어머니도 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머니들이 일하지 못하게 하는 규칙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린 나는 알 수 없었지만, 어른이 된 나는 알게 된다. 어머니의 인생에 대해서 비로소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좋은 추억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누구나 나이를 먹게 마련이고, 그만큼 많은 이들을 떠나 보내야 했으니 말이다. 늙어 간다는 것은 각자에게도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과 가족에게도 짐을 지우게 마련이다. 그렇게 렌클은 자신과 남편을 키워 주었던 어른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지쳐가는 마음을 다독여야 했고,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은 바로 정원에 찾아오는 온갖 생물들이었다. 


그렇게 렌클의 인생 이야기와 자연 이야기가 짧은 분량으로 서로 교차되면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이 책은 소박하지만 기적적인 순간을, 특별하진 않더라도 작은 깨달음을 선물처럼 안겨준다. 자연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책들을 꽤 읽어 왔지만, 이 책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미국 남부 지방 대가족 출신인 렌클의 수많은 친척, 가족들의 이야기와 함께 진행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분량 자체는 짧은 글들의 연속이지만, 글 하나하나가 빛나는 통찰로 가득해 꼼꼼히 읽고, 또 읽고 싶은 책이었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가 자연으로부터 배운 상실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탄생도, 죽음도 모두 공평하게 존중 받을 만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것, 우리의 언어를 넘어서는 어떤 것이 매일 평범한 하늘과 바다와 숲속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 아름다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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