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지는 마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3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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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 나에게는 이것이 글을 쓰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나는 그 자유를 확인받기 위해 책을 읽고, 나처럼 책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누군가를 떠올리며 글을 쓴다. 한편으론 좋아하는 마음을 말할 수 없어 다른 것으로 빗대어 말하고, 말할 수 없다며 숨어버린 시간들이 내가 소설을 읽고 쓸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식으로 펼치고 싶다. 그리 대단한 취향이 아닐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해나가고 싶다.               p.39~41


김희선 작가의 <밤의 약국>, 송승언 작가의 <덕후일기>에 이은 핀에세이 세 번째 작품이다. <제 꿈 꾸세요>, <없는 층의 하이쎈스> 등의 작품을 발표했던 김멜라 작가의 첫 에세이로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한 글과 미발표된 원고를 묶었다. '열심히 읽지 말아주세요'라는 제목의 글로 에세이 연재를 시작했다는 작가의 글은 굉장히 솔직하고, 내밀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에세이가 누군가와 마주 앉아 대화하는 거라면 자신은 그런 쪽으로 영 소질이 없다고, 그래서 자신은 에세이를 쓰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서 쉽게 시작할 수 없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어쩌면 에세이라는 그 어려운 산을 향해 걸음을 뗄 수 있도록 해준 건 곁에 있는 오랜 연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유년 시절부터 가장 원하는 유일한 하나에 모든 힘을 쏟았다는 작가에게 유일한 하나는 엄마였다가 친구였다가 지금은 연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오랜 연인 안온과의 일상 이야기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글을 읽다 보면 안온이라는 사려 깊고, 다정한 인물이 마치 소설 속 캐릭터인 것처럼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그만큼 소중한 대상을 대하는 서로의 태도에 담긴 마음이 와 닿았고, 충만한 행복과 따스한 안도같은 감정들이 손에 잡힐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글을 읽어 주고, 그 글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작가로서 매우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든든한 지원군이자 가족과도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만큼 작가와 연인의 관계는 특별하게 느껴졌다. 





어떤 기대나 포부를 담는 대신 그런 기대를 내려놓는 가벼움으로, 명사보다는 동사로, 문지르고 비비는 접촉으로, 긴장이 풀린 휴식, 몸과 몸이 닿았을 때 저절로 새어 나오는 웃음으로, 내가 뿌리내릴 수 있는 땅과 뻗어가고 싶은 하늘을 이름에 담고 싶었다. 내가 느끼는 충만한 순간을 글로 쓸 수 있기를 바랐다. 그것이 세상에 내어 보일 수 있는 내 안의 사랑이니까. 내가 받은 선물이니까. 괜찮아, 멜라져도 돼. 그렇게 편한 얼굴로 말하고 싶었다. 부디 그 이름이 세상에서 마음껏 멜라지기를 바라며.                 p.305


젊은 작가상, 문지 문학상, 이효석 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가장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지만, 서른둘 겨울에 처음 소설을 발표한 이후 6년 동안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미발표 원고까지 긁어모아 겨우 첫 소설집을 냈지만, 인터넷 서점 판매 지수가 도무지 오르지 않아 초조하고, 서글퍼하던 불면의 밤이 있었다.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던’ 그 시간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내고 있는 지금은, 지난 6년간 발표한 소설을 합하고 곱한 것보다 더 많은 글을 쓰고 있다. 좋았어, 잘했어, 잘하고 있어,와 같은 말이 더 나아갈 힘을 얻게 한다. 작가 역시 좋아요, 라는 말을 직접 하는 건 잘못하지만, 그런 말들로 용기를 얻고,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헤매던 시절을 거쳐, 지금은 삶에서도, 글에서도 안정을 찾은 작가의 일상을 응원해주고 싶어졌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왜 좋은지, 무엇이 좋은지, 그 이유를 자세히 밝히면 환상이나 신비감이 사라진다고도 하지만, 작가는 좋은 이유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 마음을 되새기는 게 좋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자신에게 '마땅히 좋아할 만하다'라고 말하며 그 마음을 지지해주고 싶다는 말이 참 예쁘고도, 사랑스러웠다. 이 책 속에는 그렇게 작가가 좋아하는 것들에 관한 고백과 기록들이 가득하다. 비, 수박, 클래식 협주고, 남산도서관 4층 자연과학실, 그리고 온점. 그렇게 쓰인 글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담긴 어떤 정서와 반짝거리는 감정들로부터 보편성을 뛰어 넘는 진실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핀 에세이> 시리즈는 텀이 긴 편이라, 더 기다리며 읽는 맛이 있는 것 같다. 내년에는 또 어떤 작가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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