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대문을 열면
허은미 지음, 한지선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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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면 파란 대문이 보인다. 그 파란 대문을 와락 열고 들어서서 "다녀왔습니다" 인사 후 다락방으로 쪼르르 올라간다.  좁은 다락방에서 동생과 함께 그림도 그리고, 장난감 놀이도 하고, 혼자서 책도 읽고, 작은 창문으로 동네 구경도 한다. 집집마다 널어놓은 빨래들, 뒤노는 아이들, 아랫집 친구가 마당에서 목욕하는 모습까지 다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파란 대문에 노란 종이가 붙는다. 큰길을 내고, 상가를 짓고, 아파트를 지어야 하니 집을 비우라는 통보였다. 그렇게 동네 친구들과도 작별하고, 뛰어 놀던 골목길과도 인사를 하고, 이사를 간다. 이제 파란 대문 우리 집은 어디로 갔을까? 




하얀색의 텅 빈 화면에 대충 연필로 쓱쓱 그려 넣은 듯한 심플한 계단, 그리고 신나서 계단을 뛰어 올라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 표지 이미지가 산뜻하다. 하나, 둘, 셋, 넷,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면 뭐가 나타날까?


마당이 있는 집에는 봄이 되면 나팔꽃을 심는다. 버려진 화분마다 꽃씨를 심고, 햇볕 잘 받으라고 파란 대문 앞에 내다 놓으면, 곳 파랗고 여린 싹이 얼굴을 내민다. 꽃들이 하나, 둘, 셋, 앞을 다투며 피어나면, 나팔꽃 덕분에 골목이 다 환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맛있는 음식을 하면 옆집에 한 접시 가져다 주고, 속속들이 가족의 사정도 다 알고, 아이들과 친구이면 부모들끼리도 알고 지내게 되는 풍경은 지금은 보기 힘든 모습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 도시는 점점 더 삭막해진다. 




다락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잡동사니들, 마당 뒤쪽엔 장독대들이 놓여 있고, 빨래줄에는 빨래들이 널려 있으며, 한 켠에는 과일도 주렁주렁 열려 있다. 종을 울려 주는 커다란 벽시계, 다이얼을 돌리는 유선 전화기, 발을 굴려서 드르륵 박는 커다란 수동 재봉틀, 꽃무늬 커튼... 지금은 다 잊어 버렸지만 우리의 어린 시절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풍경들이 아닐까 싶다. 이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작가가 살던 서울의 한 동네의 풍경과 자전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의 많은 공감을 자아낼 것 같다. 


이 작품 속 아이처럼 대부분 태어나 자란 곳에서 어린 시절을 거쳐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그때 그 시절을, 다시 한번 현재로 소환시켜준다. 




이 그림책은 7,80년대 서울의 동네 풍경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재개발로 인해 정든 집을 떠나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 아이의 시선으로 '집'이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그려내는 작품이다. 어렸을 때부터 아파트에서 살았던 터라 극중 아이처럼 마당 있는 집에서 사는 것 같은 경험은 해보지 못했지만, 그 시절 살던 집과 현재 살고 있는 동네의 분위기는 꽤나 다르다. 이 책 속에 나오는 것처럼 동네 아이들과 해가 질 때까지 놀고, 뛰어 다니다 각자 엄마들이 부르는 소리에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해졌지만 그 시절 함께 시간을 보냈던 친구들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내가 살던 집은 그대로 있을까? 그때 그 친구들은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정감 있는 드로잉과 하얀 페이지 곳곳을 물들이는 색감들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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