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정신의학사의 위대한 진실
수재나 캐헐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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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과학자들은 우주를 탐사하고, 심장을 이식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달팽이관을 이식하여 청력을 선사했다. 의사들은 호지킨 림프종 환자에게 다른 여성의 골수를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고했다. 유방촬영술이 개발되어 비침습적 방법으로 몸 안을 들여다보며 유방암을 감지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우리는 세계의 커다란 수수께끼들을 하나씩 풀어갔다. 우주, 암, 불임을 정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래의 질문에 대해서는 여전히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정신질환이란 무엇일까? 혹은 더 적절하게 묻자면, 무엇이 아닐까?           p.196


이 책의 저자인 수재나 캐헐런은 <뉴욕 포스트>의 촉망받는 기자였던 스물네 살 때 정신질환 오진을 경험한다. 병명은 '자가면역 뇌염'이었지만 의사들은 차트에 '조현병'이라고 적었고, 그로 인해 잘못된 정신질환 치료를 받고 결국 정신병원에 강제 수감이 결정된다. 당시 한 의사의 끈질긴 노력으로 정확한 병명을 밝혀낼 수 있었지만, 신체질환을 정신질환이라고 진단한 오진은 그녀의 삶을 완전히 뒤흔들고 만다. 그로 인해 저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고, '로젠한 실험'이라는 흥미로운 주제와 마주하게 된다. 


정신의학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동시에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된 이 실험은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가 자신을 포함해 정신질환 병력이 없는 여덟 명의 정상인들을 미국 각지의 정신병원으로 보내 의사들이 가짜 환자들을 가려낼 수 있는지 테스트한 것이다. 충격적인 결과는 진료받은 병원 모두 그들을 정신병자로 오진했다는 것이고, 그들은 평균 20여 일 동안 정신병동에 수감 당해 온갖 비윤리적인 행태와 부당한 대우에 노출되었고, 꼼짝없이 잘못된 정신질환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 실험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정신의학계의 진단체계와 치료법에 대한 근본적인 논쟁이 시작된다. 과연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신체냐 정신이냐, 뇌냐 마음이냐? 난감한 이 문제가 우리를 영원히 괴롭히고 있다. 이것은 누군가의 생사가 걸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골대가 옮겨지고 정의가 바뀔 수는 있겠지만 결국에는 같은 이야기다. 우리는 어떤 질병이 다른 질병보다 더 우리의 공감을 살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이것이 바뀌어야 한다. 변화는 그저 어딘가에 침대를 더 늘리고 사람들을 나 몰라라 하는 것으로 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삶(과거와 현재)의 토대를 이루는 것을, 그리고 환경이 병과 건강에 관여하는 수많은 방식들을 더 넓은 시야로 보아야 한다.             p.417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로젠한을 포함해 총 여덟 명(대학원생, 심리학자 셋, 의사 둘, 화가, 주부로 남자 다섯, 여자 셋)은 동부 서부 해안의 다섯 개 주 열두 곳의 시설에 정체를 숨기고 들어간다. 그들은 의사에게 환청이 들린다고 말했고, 의사들은 이런 증상만을 근거로 모든 '가짜 환자'들에게 심각한 정신질환 진단을 내렸다. 이 중 한 명만 조울증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조현병이었다. 입원 기간은 7일에서 52일로 다양했고, 입원해 있는 동안 총 2100개의 알약(독한 항정신제)이 건강한 사람들에게 처방되었다. 물론 가짜 환자들은 알약을 삼키지 않고 숨겼다가 버리도록 훈련받았지만 말이다. 이쯤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정신병원 시설에서 미친 사람 취급을 당했을지 궁금해진다. 멀쩡한 사람이 정신이상자로 몰린 경우가 얼마나 많았을까. 그저 정상적인 행동을 해도 정신질환의 꼬리표를 달면 비정상적인 것으로 잘못 해석되니 말이다. 


수재나 캐헐런은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역사적 사실 외에 궁금증들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정신의학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오진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실험 후 가짜 환자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데이비드 로젠한은 이 실험을 왜 계획했으며, 이는 위대한 사건인가 추악한 사기인가? 이 과정은 웬만한 추리 소설 속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것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로젠한의 유품에서 시작해, 실험에 참가했던 이들 중에 생존한 인물들과 남아 있는 소수의 자료들을 분석하고, 로젠한이 실험을 계획한 동기와 실험에 참가했던 가짜 환자들의 정체를 드러낸다. 이 책은 이 역사적 실험의 이면을 추적해 정신의학의 맨 얼굴을 전면에 드러내어 보여준다. 우울증, 공황장애, 성인 ADHD, 조현병 등 정신질환이 만연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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