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만화선 6
양윤옥 옮김,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Jc 드브니 각색, PMGL 만화 / 비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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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그길로 사라졌어요. 연기처럼. 그 뒤로 전혀 아무 소식도 없어요. 24층과 26층 사이 계단에서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춰버렸어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아홉 편이 각각 한 권의 만화로 재탄생했다. 프랑스 만화가 PMGL과 아트 디렉터 Jc 드브니는 독창적 이미지 연출을 선보이면서도 원작 소설의 스토리와 인물, 대사 등을 왜곡 없이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원작의 문장들을 손실 없이 담아내 하루키 소설 특유의 글맛을 살렸고, 창의적인 컷 분할, 디테일한 그림에는 애독자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의미와 장치를 가득 채웠다. 권마다 그림체를 다르게 해 단편소설 각각의 분위기를 살렸다. 〈빵가게 재습격〉과 같은 초기작부터 〈개구리 군 도쿄를 구하다〉를 거쳐 〈타일랜드〉 〈셰에라자드〉 등 최근작까지 만나볼 수 있다.

 

 

먼저 만나본 것은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라는 작품이다. 이 단편은 '도쿄기담집'에 수록되었던 작품으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래픽노블로 연출된 스토리가 원작 단편소설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탐정이 여성 의뢰인을 만나 실종된 사람을 찾아 다니는 것이 주요 스토리인데, 의뢰의 내용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남편을 찾아 달라는 내용이다. 남편은 같은 아파트의 24층에 사는 시어머니 집에 갔다가 26층인 그들의 집으로 올라오는 계단 중간에서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탐정은 26층과 24층 사이를 샅샅이 뒤지면서 계단을 지나가는 이웃들과 말을 나누기 시작한다. 과연 사라진 남자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근데 아저씨,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어제도 여기 있었죠, 언뜻 봤는데."
"이 근처에서 뭘 좀 찾고 있어."
"뭘 찾는데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문 같은 걸 거야. 잘 모르겠네. 어쩌면 그건 문조차 아닐 수 있어."

 

의뢰인의 시아버지가 삼 년 전에 전차에 치여 돌아가신 뒤, 시어머니는 불안신경증에 걸렸다. 특히나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비가 내리는 날에는 증세가 심해지곤 한다. 시어머니는 그들 부부가 살고 있는 맨션의 다른 층으로 이사를 왔고, 부부는 26층, 시어머니는 24층에 살고 있었다. 불안신경증세가 생길 때마다 그들이 내려가서 진정시켜 드리곤 했다고 한다. 증권회사에 다니는 남편은 사건 당일, 골프를 치러 갈 예정이었으나 비가 오는 덕분에 취소되어 집에 있었다. 일요일 오전, 어머니에게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현기증이 난다고 전화가 왔고, 남편은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아침 식사를 준비해달라고 아내에게 말한다. 이십 오분 뒤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와 어머니가 안정되셨으니 지금 계단으로 가겠다고, 배가 고프다고 한다. 아내는 팬케이크를 굽고, 베이컨을 볶으며 아침 식사를 준비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어머니 집에 전화했더니 한참 전에 돌아갔다는 얘기만 하시고, 남편은 아무 소식도 없이 그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평소에도 비좁은 곳에 밀폐되는 걸 참을 수 없어했던 남편은 엘리베이터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언제나 계단을 이용했다. 그러니까 그는 24층과 26층 사이의 계단 중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지갑도 면허증도 신용카드도 시계도 없이 맨손으로 말이다. 누구나 별다른 이유 없이 생에서 그저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는 것, 물론 실제로 일상 속에서 갑자기 누군가 사라지는 초현실적인 사건은 상상 속에서만 벌어지곤 하지만 말이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의뢰인과의 마지막 통화 후에 탐정은 생각한다. '나는 다시 어딘가 또 다른 곳에서 찾아 다닐 것이다.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라고. 처음부터 의뢰인의 의뢰는 받지만 사례비는 받지 않겠다는 탐정의 미스터리한 사연 또한 그렇게 여운을 남긴 채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어딘가 불가사의하고 기묘해서 전혀 실제로 벌어질 것 같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소설이 아니라 만화 형식으로 읽다 보니 그게 또 어쩐지 현실감을 부여해서 더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게다가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졌던 그림체가 읽다 보니 너무도 하루키의 작품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굉장히 색다른 그래픽노블 작품이었다. 소설을 보다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이 특별한 기회를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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