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문병욱
이상교 지음, 한연진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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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년이 된 예지는 교실로 찾아가는 길이 아직 낯설다. 시끌시끌 북적대는 교실에서 병욱이는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다. 아이들은 병욱이가 말도 잘 안 하고 날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닌다며, 바보라고, 좀 이상한 애라고 수근댄다. 하지만 예지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바보인 건 아닌데. 병욱이는 문구점에서 주인 아저씨에게 물건을 훔쳤다는 오해를 받아도, 친구들이 뒤에서 이상한 소문을 내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예지는 개학식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났던 병욱이와 병욱이네 할머니를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쪼글쪼글 웃어 주었던 할머니의 미소도 기억한다.

 

 

어느 날 미술 시간에 친구 얼굴 그리기를 한다. 예지는 은솔이 얼굴을 그리다 망쳐서 친구와 함께 막 웃는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그린 그림 중 다섯 장을 골라 교실 뒤에 붙여 놓았다. 그런데 병욱이가 그린 그림 속 아이가 꼭 예지같다며 옆에서 선민이가 큭큭 웃는다. 결코 잘 그렸다고는 할 수 없는 그림이었지만, 진한 눈썹도, 웃을 때 올라가는 입꼬리도, 양갈래로 묶은 머리도 꼭 자신 같아서 예지는 그림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예지는 아이들이 바라보는 방식이 아닌, 자신이 보고 느끼는 대로 병욱이를 지켜본다. 그리고 예지의 그 작은 마음이 병욱이를 향한 친구들의 마음도 조금씩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새학기가 시작이 될 때마다, 새로운 학년이 될 때마다 설레는 마음과 함께 긴장되는 기분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되면 든든한 지원군이라도 생긴 것처럼 안심이 되었지만, 어쩐지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고 나면 교실 전체가 낯설게 느껴지고 서먹한 시간이 한동안 지속되었으니 말이다. 그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던 나였기에, 그렇게 불편한 시기엔 보통 책을 펴들고 앉아 있었다.

 

나중에 단짝이 된 친구가 말해주었는데, 쉬는 시간마다 혼자 책을 읽고 있어서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친구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어서, 먼저 말을 건네주어서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용기 내어 내민 딱 한 걸음 덕분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 시절 나와 내 친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마도 비슷한 학창 시절의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작품은 한국 동시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그림책 작가인 이상교의 글과 <눈물문어>, <옥두두두두> 등의 그림책을 쓰고 그린 한연진 화가의 그림으로 완성되었다. 이어지지 않은 테두리, 형태를 벗어나 서로를 침범하고 물드는 색과 패턴으로 새롭게 시도한 그림 스타일이 예쁘기도 하지만, 작품의 주제를 더욱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 좋았던 작품이다.

 

뭐든 시작이 어렵다고 딱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쉽지 않다. 이는 아이들의 관계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누군가 한 명이 쟤는 저래서 이상해, 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어쩐지 그때부터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그 아이 주변에 생기기라도 한 것처럼 벽이 생겨 버린다. 그럴 때 누군가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기라도 하면, 쉽게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건데 말이다. 이 작품 속 예지처럼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우리의 내일을 더욱 단단하고 빛나게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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