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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사라진 날
할런 코벤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23년 8월
평점 :
사이먼은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선택과 나쁜 결정들, 여러 갈림길을 떠올렸다. 그리고 페이지가 둔 어떤 수가, 그녀가 통과한 어떤 문이 아이를 이런 지옥 같은 곳으로 이끌었을까 생각했다. 그의 잘못은 아니었을까. 어쩐 점에서는 당연히 그렇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비효과. 하나를 바꾸면 모든 것이 바뀐다. 만일이라는 단어가 꼬리를 물었다. 과거로 돌아가 무언가 바꿀 수만 있다면... 페이지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훌륭한 딸이었다. 나쁜 일에 휘말리는 것을 싫어했고, 아주 작은 일로 문제가 생겨도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러면 사이먼은 참지 못하고 아이를 꾸짖었다. 그때 참아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조금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p.100~101
뉴욕 증권가에서 일하는 사이먼, 소아청소년과 의사인 아내, 명문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새 학기를 준비 중인 아들, 모든 게 완벽해 보였던 그의 삶은 딸인 페이지가 마약에 빠져 가출해버린 뒤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조용하고, 착한 딸이었던 페이지는 대학에 가서 자신보다 열 살이나 많은 남자 에런을 만나게 되면서 완전히 변해 버렸다. 에런은 페이지를 마약에 빠뜨렸고, 그녀가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장본인이었다. 사이먼은 수소문 끝에 길거리 공연을 하며 구걸하는 모습으로 있는 딸을 발견하지만, 페이지는 아빠를 마주하자 다시 도망쳐버리고 만다. 그리고 얼마 뒤 사이먼은 에런이 살해당했으며, 그와 함께 살던 페이지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딸의 흔적을 뒤쫓기 시작한다. 딸을 구하려는 아빠의 여정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할런 코벤의 신작이다.
이야기는 언제나 평범한 일상의 균열이 깨지면서 시작되고, 누군가 사라지면서 본격화되는데, 평범한 우리의 주인공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마치 파도처럼 밀려오는 숱한 역경을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믿음과 비밀, 그리고 거짓말과 진실 사이를 오가는 거듭되는 반전으로 아찔한 스릴을 선사하며 치밀하게 설계된 퍼즐 조각이 하나둘 맞춰지기 시작한다. 할런 코벤의 작품들은 롤러 코스터처럼 극강의 스릴과 재미를 선사하는데, 이번 작품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다.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전혀 없이, 모든 캐릭터와 사건이 한 방향으로 향해 달려가며 빈틈없이 정교한 작품이 만들어졌다. '단언컨대 할런 코벤 최고의 작품'이라는 언론평처럼 스릴러의 거장이 제대로 솜씨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위험한 순간에 봉착하면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한다.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총알을 보고 피할 수 있던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그건 착각이다. 시간은 일정하게 흘러간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느끼는 이유 역시 설명할 수 있다. 어릴 때는 모든 경험이 새로워서 기억이 신선하고 깊게 각인된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이가 들수록, 특히나 틀에 박힌 일상에 갇힐수록, 새롭고 선명한 기억이 거의 생성되지 않아서 시간이 빠르게 간다고 느낀다. 어린 시절 여름방학 때 시간이 영원히 멈춘 것처럼 느껴지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어른들에게는 눈깜짝할 만큼의 시간이다. 지금, 사이먼이 총알을 뚫고 울려 퍼지는 루서의 외침을 듣는 이 순간, 사이먼에게 시간은 끈적한 시럽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p.443~444
이야기는 사라진 딸을 찾아 나선 사이먼을 중심으로 미국 전역을 돌며 ‘타깃’을 사냥하는 2인조와 실종사건을 추적하는 FBI 출신 사설 여성 수사관 엘레나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사이먼은 아내인 잉그리드와 함께 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에런이 살해당한 곳에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잉그리드가 총을 맞고 혼수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게 되고, 사이먼은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슬픔을 애써 누르며 에런의 죽음에 얽힌 비밀과 딸과의 관계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누군가로부터 의뢰를 받고 청부 살인을 하는 2인조의 정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그들이 사이비 종교와 뭔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하고, 전혀 상관없이 보이는 별개의 사건을 추적하다가 뜻밖의 고리로 연결되며 알게된 사설 수사관 엘레나는 뛰어난 수사 실력으로 사이먼에게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 두툼한 페이지의 중반에 이르러서도 독자들은 전제척인 그림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그만큼 정교하게 짜인 구성에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부모가 그럴 것이다 자식이 바깥세상에서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자신이 부모로서 충분히 아이에게 관심을 보였는지, 너무 엄격하거나 느슨한 부모는 아니었는지, 자신이 아이를 키우면서 내렸던 결정들을 수백만 번 되묻고 곱씹게 된다. 파멸의 불씨가 될 만한 모든 순간을 곱씹고 찾으려고 해보지만, 사실 뭐가 잘못된 것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어둠이 아이들의 영혼을 잠식하는 일이 생기면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듯이 사이먼 역시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책하고, 돌아본다. 특히나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있었고, 한발 물러나 아이를 믿어주는 것이 더 좋은 아빠가 되는 길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자신이 뭔가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의심한다. 아내 대신 나서서 총을 맞을 수도 있었다고, 딸에게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보호했어야 한다고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그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추락하지만, 그럴수록 독자들은 이야기에 점점 더 몰입하게 된다. 그야말로 팽팽한 긴장감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방심할 틈을 주지 않는 작품이었다. 최근에 나왔던 할런 코벤 작품 중에 가장 완성도 높고 뛰어난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니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