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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만세 - 100%의 세계를 만드는 일
리베카 리 지음, 한지원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평점 :

출판 일을 하다 보면 만나는 모든 사람이 책을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책을 쓰지 않는다면 쓰는 방법이나 어떻게 하면 책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지 조언을 구할 수도 있고, 한발 나아가 당신에게 책을 쓸 생각이 있는지 물어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덕에 구텐베르크 은하계는 오늘도 돌아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작가는 엄밀히 말하면 한 사람이 아니다. 괜찮은 작가라면 그는 한 사람이 되고자 애쓰느느 수많은 사람일 것이다" 라고 쓴 바 있다. 그 '한 사람'은 작가가 보여주기로 선택한 것을 통해서만 우리를 찾아온다. 그를 찾을 단서란 작가가 사용한 모든 단어와 그 단어의 탄생에 얽힌 뒷이야기뿐이다. P.29
글자가 단어가 되고, 단어가 문장이 되고, 문장이 글이 되고, 글이 책이 된다. 우리가 읽고 있는 책 속 단어들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날것의 단어들은 어떻게 합쳐져 문장이 되고, 문단을 이루고, 페이지를 채우게 된 걸까. 영국 펭귄 출판사의 편집장인 리베카 리는 20년 동안 수백 권의 도서를 편집해왔다. 그는 이 책에서 그간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작가의 손을 떠난 글이 어떤 식으로 독자를 만나게 되는지, 책의 겉과 속이 하나로 완성되고, 편집되지 않은 날것의 텍스트가 매끄럽게 잘 읽히는 글로 변화하게 되는 신비를 풀어낸다. 기획, 교정과 교열, 팩트 체크, 윤문, 색인 작업, 번역과 표지 디자인, 인쇄를 거쳐 하나의 책이 만들어 지는 과정은 책의 세계라는 마법을 보다 현실적이고, 다채롭게 보여준다.
도서관에서 가면 특유의 냄새가 있다. 오래된 종이의 냄새, 책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만 맡을 수 있는 그런 냄새를 좋아한다. 아마도 아주 어릴 때부터 책과 함께 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런 종이의 냄새에 반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책의 물성을 좋아하기 때문에 종이책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을 사랑한다. 종이를 한장 넘길 때의 그 소리와 촉감, 냄새를 사랑하고, 책이라는 물건이 지니고 있는 무게와 품격, 그리고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혀 있을 때의 그 존재감까지 모두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수록된 모든 이야기들이 너무도 매혹적이라, 도무지 페이지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파피루스에서 구텐베르크의 활자를 지나 전자책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책이라는 매체에 얽힌 역사적 흐름과 번역과 교정 전후로 글이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지, 또 어둠 속에 가려져 있는 유령 작가들의 실체와 잃어버린 글들의 리스트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했으니 말이다.

하루하루만 보면 여기가 출판계의 가장 우울한 면을 보여주는 곳일 겁니다. 책이 잘 팔리기만 할 거란 생각은 허상에 가까워요. 출판 사업의 기초는 판매와 반품이에요. 요즘 펭귄 출판사는 예전보다 반품률이 낮아요... 진짜 문제는 이 책이 읽을 만한가, 가치 있는가, 좋은 책인가 하는 것입니다. 책이 구간이든 신간이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당신이 그 책을 안 읽었다면 구간이더라도 사실은 신간인 셈입니다. 책은 읽히기 전까지 다 신간인 거죠.
그렇다. 오래된 글은 새로운 독자를 만날 때마다 새 생명을 얻는다. p.362~363
출판사에 원고가 도착하기 전에 저자와 그들의 에이전트와 기획 편집자는 글을 생각해내고, 편집하고, 재편집하고, 초고를 완성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진행한다. 마침내 완성된 글은 출판사에 도착해 편집자, 교열자, 색인 작성자, 교정자같이 그림자처럼 일하는 전문 글쟁이들을 만나고, 이후에는 디자이너와 조판자와 인쇄업자의 손을 거치며 계속해서 다듬어진다. 하나의 글이 독자들의 손으로 향하기까지의 여정은 모두 이렇게 기나긴 과정을 거쳐서야 끝이 나는 것이다. 글의 세계에서 도처에 존재하는 유령 작가들과 디자이너, 번역가, 인쇄업자, 에이전트를 비롯해 함께 책을 만들어가는 이들의 목소리 또한 좋은 글을 만들기 위해, 더 좋아지고 자유로워지도록 도와주기 위해 존재한다. 베테랑 편집자가 들려주는 활자와 편집의 세계는 가슴을 뛰게 하는 만세의 순간이 깃들어 있어 더욱 특별하다.
이 책은 모든 책 뒤에는 좋은 글을 더 좋고 자유롭게 만들고자 애쓰는 고쳐쓰기 부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편집자든 에이전트든 색인가든 조판자든 인쇄업자든 디자이너든, 모두 좋은 글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리고 그 글을 더 좋은 글로 만들기 위해 무대 뒤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최종적으로 책을 집어든 독자의 눈에 띄지는 않겠지만, 실은 이 숨겨진 인력들이 뒤편에서 글에 의미와 의의를 부여하고 있으니 말이다. 출판이란 공동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 그들은 오늘도 100퍼센트라는 완벽의 세계에 가닿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만들어 준 책이었다. 한 권의 책을 둘러싼 출판과 편집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좋은 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탐색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