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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 1~2 - 전2권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8월
평점 :
"자네는 저 집이 아니라 추억을 사랑하는 거야. 일종의 '향수병'이라고 할 수 있지. 지난날은 행복했고, 그 시절 우리의 선택이 최선이었다고 믿게 만드는 게 바로 향수병이지. 지난날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때가 좋았지.'라고 생각하는 건 사실 우리의 뇌가 병들어 향수든 우수든 찔끔찔끔 분비하는 탓이거든. 지난 과거가 헛일은 아니었다고, 공연히 시간을 허비한 건 아니었다고 믿게 하려는 거야. 시간을 허비하는 건 인생을 내다 버리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 1권, p.60
오래 전에 만났던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이라는 작품을 아주 좋아했었다. 미스터리와 소설쓰기라는 매혹적인 소재를 절묘하게 그려낸 작가의 능력에 감탄했고, 캐릭터, 플롯, 반전 모두 너무 흥미진진했던 터라 조엘 디케르라는 작가에게 한 눈에 반해버렸으니 말이다. 그 뒤로 출간되었던 <볼티모어의 서>와 <스테파니 메일러 실종사건>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오랜 만에 만나게 되는 조엘 디케르의 신작이 이렇게 두툼한 분량으로 출간되어 매우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었다. 특히나 이번 작품은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과 <볼티모어의 서>를 잇는 삼부작의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앞선 작품들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번 신작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 작품은 스토리 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건을 수사하는 중심 인물이 겹치기 때문에 연작소설 같은 느낌도 든다.
이 작품은 극중 작가인 마커스 골드만이 스승이자 멘토인 해리 쿼버트가 관련되었던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을 발표하고 유명인사가 된 시점 바로 그 다음부터 시작된다. 현재 시점인 2010년과 11년 전인 1999년 시점을 끊임없이 오가며 알래스카 샌더스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살해된 사건을 파헤친다. 마커스 골드만이 형사인 페리와 함께 사건을 수사하며 과거에 묻혀 있는 진실을 찾아내는 구성이라 자연스럽게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이 돌아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을 가제본으로 만나본 사람들이 많을 텐데, 본격적인 이야기는 1권의 후반부부터 시작되어 2권에서 제대로 무르익은 재미를 보여주고 있으니 두 권짜리 본책으로도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본책은 1권이 484페이지, 2권이 5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인데, 가제본 도서는 358페이지까지라 1권도 채 되지 않는 분량이기 때문에 가제본만 읽고 나서 그 뒤의 내용을 읽지 않는다면 후회하게 될테니 말이다. 11년 전 당시 수사를 맡았던 페리가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에 관한 의문의 편지를 받고 베스트셀러 작가인 마커스와 함께 재수사에 착수하게 되는 것이 주요 플롯이다. 하지만 워낙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이다 보니 1권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두 사람이 사건을 재수사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니 진짜 이야기는 바로 그 다음부터 시작인 셈이다.
"사장님이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질문을 받게 되실 수도 있어요." 로렌이 말했다.
주유소 주인은 로렌의 말을 듣더니 재미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생활 50년째야. 서로 숨길 게 뭐가 있겠어. 필리스는 나를 속속들이 알아. 아내가 모르는 비밀이 나에게 있을 리 없잖아."
그렇지만 루이스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비밀을 깊이 감추면 그 자신조차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잊고 있던 비밀이 하수구가 흘러넘치듯이 지표로 흘러나온다. - 2권, p.203
알래스카 샌더스는 환한 햇살처럼 밝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게다가 어찌나 상냥하고 친절한지 그녀가 일하는 주유소 사장은 물론, 손님들 또한 모두 그녀를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운트플레전트의 스코탐 호수 근처 모래밭에서 알래스카의 시신이 발견된다. 곰이 시신을 훼손하고 있는 걸 누군가 발견해 신고한 것이다. 처음에는 곰에 의한 피해인가 했지만, 그녀의 사인은 교살이었다. 피해자의 가죽바지 뒷주머니에서 종이가 한 장 발견된다. '나는 네가 한 짓을 알아.'라는 컴퓨터로 쓴 짤막한 문구 한 줄이었다. 여러 미인대회에서 수상할 정도로 미모가 출중했고, 영화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스물 두 살의 젊은 여성은 대체 왜 살해된 것일까.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자, 그리고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과 <볼티모어의 서>에서도 화자로 등장했던 마커스 골드먼이 등장한다. 작가인 마커스 골드만은 스물여덟의 나이에 발표한 첫 소설로 단 몇 주만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를 유명 작가로 만들어준 작품은 바로 스승이자 멘토였던 해리 쿼버트가 관련되었던 그 사건이다. 해리의 집에서 유해 한 구가 발견되었는데, 수십 년 전에 실종되었던 소녀로 추정되었고, 그 일로 해리는 체포된다. 어린 소녀와의 부적절한 관계, 살인과 오랜 세월의 은폐로 인해 도서관마다 비치될 정도의 문학적 교과서같은 위대한 작품을 쓴 국민 작가는 한순간에 추락한다. 마커스는 스승에게도 분명 무슨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믿고, 그 사건에 뛰어들어 진실을 파헤치는 데 일조를 하게 되고, 그 과정을 소설로 써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다. 이 작품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에 등장하는 마커스는 바로 그 시점의 마커스이다. 첫 소설이 영화로 각색되어 크랭크인에 들어가고, 두 번째 책 <해리 커버트 사건의 진실>이 출간되어 영화 판권 계약을 논의하고 있는, 유명 작가가 된 마커스말이다. 하지만 그는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해리가 사라진 뒤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던 중 11년 전에 있었던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의 재수사가 결정되고, 마커스는 페리와 함께 수사를 펼치게 된다. 그렇게 이 작품은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업그레이드 된 조엘 디케르의 면모를 보여준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단숨에 읽어 내리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재미있는 소설을 찾고 있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