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평범한 가족
마티아스 에드바르드손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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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야말로 평범한 가족이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가치 있는 인생을 구축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만, 망치는 건 한순간이면 족하다. 한 사람의 가감 없는 현재를 만드는 데는 오랜 세월이(몇 십 년, 어쩌면 평생이) 걸린다. 그 여정은 거의 늘 우회적인데,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시행착오가 쌓여 이뤄지는 법이니까. 우리는 우리가 한 시도와 시련에 의해 빚어지고 만들어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올가을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일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p.18

 

만약 평범한 내 자식이 살인 혐의를 받게 된다면 어떨까, 갑자기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체포되어 구금된 상태로 만날 수 조차 없게 된다면, 드러나는 증거를 믿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식을 믿을 것인가? 여기, 완벽하게 평범한 가족이 있다. 아빠는 스웨덴 국교회의 존경받는 목사인 아담, 엄마인 올리카는 커리어의 정점에 선 잘 나가는 변호사였고 똑똑하고 예쁜 열여덟 살 딸 스텔라까지 세 식구의 일상은 평화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스텔라가 젊은 사업가 크리스토퍼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면서 그들의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만나는 사이였고, 남자가 살해된 날 스텔라가 그의 집에 왔던 걸 목격한 이웃이 있었다. 게다가 핏자국으로 뒤덮여 있는 스텔라의 옷도 집에서 발견된다.

 

아담과 올리카는 정말 우리 딸이 살인범이라면 어쩌지? 싶은 두려움이 들었지만, 딸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아버지인 아담과 딸 스텔라, 그리고 어머니 울리카의 시점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같은 사건을 대하는 다른 화자의 시점이라는 점도 흥미롭지만, 사건의 시작 지점에서부터 마지막 법정에 이르기까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어 인물의 시점대로 사건의 변화를 따라갈 수 있어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부모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사건의 진위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아이를 위해서 뭘 할 수 있느냐부터 먼저 생각하게 될테니 말이다. 그리고 내가 아이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과 불안감,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일이 없다는 절망에 휩싸인다.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바닥부터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담은 자신의 도덕규범을 지키는 문제에서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가족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다. 사람은 자기 가족을 지킬 수만 있다면 윤리와 도덕은 얼마든지 치워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자식을 변호하는 문제에서 사람들은 가장 엄격한 규율조차 얼마든지 박살 낼 수 있다. 거짓말, 죄책감, 비밀. 이것들이야말로 가족을 세운 근거들이 아닐까? 한 사람이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다른 두 사람은 부모라는 존재로 바뀐다. 자녀를 향한 사랑은 법 앞에 복종하지 않는다.           p.453

 

부모가 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없으면 죽고 못 살 것 같은 연인도, 피를 나눈 형제자매도, 평생 갈 것 같았던 친구도 떠날 수 있지만, 자식만은 포기가 안 되니 말이다. 부모는 자식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종종 터무니없는 허세를 부린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폭언도 받아들일 수 있고, 어떠한 도전도 물리칠 수 있으며, 어떠한 시련도 견딜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세상 어떤 부모도 '완벽할' 수만은 없다. 가족이란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존재이기에, 거의 무조건 믿어야 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면, 내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던 거라면 어쩌겠느냔 말이다. 이 작품에서 아버지인 아담은 딸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심란스럽기만 한데, 어떻게든 딸을 돕기 위해 목격자를 만나고, 의심가는 인물을 찾아 가고, 딸의 알리바이를 위해 경찰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아내까지도 자신에게 뭔가 숨기는 게 있다고 말이다.

 

구치소에 갇혀 있는 신세인 딸 스텔라는 자신이 여기 있을 짓을 했고, 피해자가 아니며, 누구도 자신을 동정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럼에도 그 곳의 고독이 무섭고, 싫고, 불안하다. 특히나 그녀가 과거에 있었던 끔찍했던 사고의 순간에도 피해자 역할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모두가 자신이 그럴 거라고 믿는 '강한 여자애'가 되고 싶었다는 지점에 이르면 우리는 점점 혼란스러워진다. 대체 스텔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정말 크리스토퍼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일까. 후반부에 본격적으로 재판 절차가 진행되기 시작하면, 이야기의 시점은 어머니인 울리카로 바뀐다. 그리고 딸을 위해 올리카가 어떤 일을 벌였는지, 그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부모라면 누구나 어느 순간 아이가 친근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존재가 되어 버리는 지점과 마주하게 된다.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진짜인지, 내가 아이에 대해서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이 작품은 시종일관 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가족을 위해 무슨 일까지 할 수 있느냐고.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드는, 재미 면에서나 구성적인 면에서도 정말 잘 쓰인 스릴러 작품이다. 곧 넷플릭스 TV 시리즈로도 공개될 예정이니, 원작 소설부터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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