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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솔로지 -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종이 될 때까지의 거의 모든 역사
송준호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6월
평점 :
200만 년 전 호모하빌리스는 지능은 있었지만 단편적이었고 아직 마음이 없는 존재였다. 180만 년 전 호모에렉투스는 강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그것이 자신인지 알아보는 자의식이 생겼다. 20~30만 년 전 호모네안데르탈렌시스는 아픈 자를 돌보고 사랑하던 이의 무덤에 꽃을 올려놓을 줄 알았다. 그리고 10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는 거침없이 유연한 상상을 하며 장신구와 추상적인 예술품을 쏟아냈다. 이 무렵 호모사피엔스에게는 또 하나의 전무후무한 정신 역량이 나타난다. '시간적 자아'라는 것이다. p.101
어떻게 지구에는 이렇게나 많은 생명이 존재하는가?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어떻게 시작해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고, 그에 대한 대답은 우주의 기원에서부터 생명의 출현과 인류의 진화로 이어지며 다양한 영역에서 나름의 결론을 내려왔다. 하지만 이 지구상에 전무후무한 문명을 구축한 현생인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한 점들이 많다. 아무래도 인간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 대해서 끊임없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사피엔솔로지’는 현생인류를 지칭하는 ‘사피엔스(Sapiens)’와 ‘학문’을 뜻하는 접미사 ‘-ology’를 결합해 창안해낸 용어로, '현생인류에 대한 학문'을 뜻한다. 저자는 의학자로서 질병과 수명의 기원을 탐구하려고 시작한 작업이 진화학, 고고학, 사회심리학, 역사, 과학사 등 다른 영역까지 끝없이 범위가 확장되었다고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밝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빅히스토리, 인류의 진화를 다루고 있는 책들은 진화 생물학이나 고생물학, 인류학 쪽에서 쓰이게 마련인데, 이 책의 저자는 현직 의과대학 교수이자 내과의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종이 될 때까지의 거의 모든 역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고, 굉장히 대중적으로 쓰였다. 잘 읽히고, 어렵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통찰력과 사유를 보여주고 있어 너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지구에 최초의 생명이 탄생하고 다세포생물이 나타나기까지 24억 년이 걸렸다. 또한, 다세포생물에서 영장류가 나타나기까지는 12억 년이 걸렸다. 영장류가 똑바로 서기까지 7,760만 년이 걸렸고, 그 이후부터 호모사피엔스가 나타나는 데에는 360만 년이 걸렸다. 호모사피엔스가 나타나 농업혁명을 일으키는 데는 29만 년이 걸렸지만, 그로부터 산업혁명이 나타나기까지는 1만 년, 산업혁명 후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데는 20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p.357
최초의 생명체가 나타난 뒤로부터 37억 년이나 지난 뒤에야 선행인류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공룡 알을 훔쳐 먹던 조그마한 포유류가 지구의 주인공으로 바뀌게 된 것은 약 6,500만 년 전 거대 운석이 지구를 강타한 후이다. 당시 지구상에 존재하던 80프로의 생명체가 멸종되었고, 이후 영장류의 진화가 시작된다. 조그만 영장류들은 3,500만 년 전쯤 대형 유인원으로 등장해 열대림을 따라 전성기를 누린다. 그리고 이들 중 수만 년 전 동아프리카 지구대를 탈출한 한 줌의 종족이 오늘날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호모사피엔스가 된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진 편이지만, 여전히 흥미롭다.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호모하빌리스, 서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에렉투스, 이후 호모하이델베르겐시스, 네안데르탈인으로 이어지는 현생인류의 진화 과정에 대해 짚어본 뒤, 점차 인류가 지구를 장악하고 개조해 가는 과정을 만날 수 있다. 호모사피엔스가 도시와 국가를 이루고, 지구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산업혁명과 화석 문명을 지나 오늘날 사이버, 베타버스 시대로 오기까지의 빅히스토리를 아우르는 내용이 이 책에 모두 담겨 있다.
앞으로 1,000년 후에도 인류는 계속 존재할까? 혹은 1만 년 후에도 인류의 문명은 존재할까? 인류는 아마도 계속 존재하겠지만, 먼 미래의 인류 문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우주의 시간에서 인간의 역사는 찰나에 불과하니 말이다. 지금 당장은 지구온난화를 걱정하지만, 빠르면 1만 5,000년에서 늦어도 3만 년이 지나면 지구는 빙하기로 회귀할 것이다. 천문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10억 년쯤 되면 태양이 너무 뜨거워져서 지구는 생명체가 거주할 수 없는 생명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50억 년이 지나면 태양이 그 연료를 다 소진해, 태양계 전체가 그 수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더 시간의 지평을 확장해 우주적 시간에서 지구의 운명을,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