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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케이지 : 짐승의 집
보니 키스틀러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6월
평점 :
통화가 끝났지만 레스터는 여전히 주방에 서서 불편하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배럿은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문제 있나?"
"부사장님." 레스터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셰이 램버트는 좋은 사람입니다.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습니다."
"나도 아는 바야." 배럿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감이지. 잘못된 타이밍에, 있어서는 안 될 장소에 있었으니까." p.39
도시에서 가장 높은 최신 건물인 마켓플레이스 타워, 일요일이었지만 30층 최상층 두 군데에서 옅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서로 반대편에 위치해 있는 두 곳 말고는 온통 캄캄했다. 한쪽에는 사십 대 초반의 잘 차려 입은 여자가 있었고, 같은 층 반대편 끝에는 사십 대 초반의 키 큰 여성이 대충 묶은 포니테일과 평범한 복장으로 있었다. 두 사람은 각자 중앙 엘리베이터로 걸어갔고, 문이 스르르 열린다. 두 여자가 엘리베이터에 탑승했고, 곧 문이 닫힌다.
그리고 7분 뒤, 911에 신고 전화가 걸려 온다. 전기가 나가서 엘리베이터에 갇혔다는 신고였다.
다시 불이 켜지고, 엘리베이터가 다시 가동되었을 때 밖으로 걸어 나온 것은 젊은 여성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탔는데, 한 사람만 살아 남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가능성은 단 두 개로 좁혀진다. 자살 혹은 살해. 엘리베이터 안에 남겨진 여성은 총상으로 사망했다. 죽은 사람은 패션업계의 거물 기업은 CDMI의 인사부 총괄 부장이었고, 살아 남은 사람은 얼마 전부터 같은 회사 법무팀에서 일하게 된 변호사였다.
살아 남은 변호사 셰이 램버트는 자살 사건을 눈 앞에서 본 목격자로 구출되지만, 점점 상황이 스스로의 무죄를 증명하지 않는 한 살인자로 몰릴 지경에 이르게 된다. 게다가 누군가 그녀를 살인자로 만들려는 듯한 음모까지 뒤에서 벌어지면서, 점점 범인이 되어 모든 것을 잃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녀는 죽은 여자가 자살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사건을 자살이 아닌 살인 사건으로 만들려는 이의 의도는 뭘까. 무죄를 주장해야 하는 이와 유죄를 증명하고자 하는 이가 팽팽히 맞서는 이 이야기는 충격적인 도입부만큼이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끝을 향해 달려 간다.
그들이 결국 빈손으로 돌아오면 나는 최대한 설득력을 발휘할 것이다. 내게는 루시를 죽일 수단이나 동기가 전혀 없기에 그녀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고 결론 내릴 합리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것이다.
나는 준비를 마쳤다. 생각을 정리하고 진술할 말을 연습했다. 거들먹거리는 그 여자와 함께 화장실에 갔을 때 찬물로 세수도 했고, 커피 한 잔과 글레이즈 도넛도 받아 들었다. 카페인 수혈을 받고 혈당도 되찾은 것이다. 이제 이 일을 끝낼 준비가 되었다. p.123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보니 키스틀러는 기업 소송을 전문으로 미국 전역에서 사건을 수임해 성공적으로 활동한 소송 전문 변호사이자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작품 역시 자신의 이력을 살려 주인공 변호사가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디테일하게 그려내고 있고, 기업 내의 복잡한 법적 문제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긴장감을 만들어 내고 있다.
<더 케이지>라는 원제 옆에 국내 버전에는 '짐승의 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 이유는 주인공이 엘리베이터를 짐승 우리(케이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그 안에 갇혔을 때의 느낌이, 딱 '우리'에 갇힌 느낌이었던 것이다.
사실 이건 제로섬 게임과도 같다. 엘리베이터에는 단 두 명이 있었고, 한 명이 죽었는데 자살한 게 아니라면, 범인은 나머지 한 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살아남은 사람은 총이 발사된 순간 자신이 그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야 할 의무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그걸 증명해야 하는 이가 다름 아닌 변호사라면, 법률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이라면 이야기는 재미있어질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그녀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 진행되면서 조금씩 드러나는 비밀과 반전들이 교묘하게 맞물리면서 치열한 두뇌 싸움을 탄탄하게 그려내고 있다.
셰이라는 인물이 숨겨온 비밀과 회사의 임원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지금 셰이의 현재에 이르게 한 과거 시점의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거대한 스케일로 만든 다음 그 모든 것들을 폭발시키는 이야기의 장악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사실 제목에서 풍겨오는 이미지 때문에 이 작품을 읽기 전에는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등장하는 스릴러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거대한 기업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범죄와 음모가 난무하는 법조인의 세계를 그리는 스릴러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