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음식들 - 우리가 잃어버린 음식과 자연에 관한 이야기
댄 살라디노 지음, 김병화 옮김 / 김영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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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 세계에서 길러지는 보리 가운데 인간이 먹는 것은 고작 2퍼센트뿐이다. 그 대부분인 60퍼센트가량은 동물 먹이로, 나머지는 몰트(맥주를 만들고 위스키를 증류하는 재료)를 만드는 데 쓰고, 극히 일부분은 발효시켜 간장과 된장을 만든다. 에머 밀과 아인콘처럼 보리를 음식으로 먹는 곳은 대개 먼 오지이거나 살기 어려운 지역이다. 에티오피아의 고원지대에서는 볶은 보리로 만든 보리차가 전통 음료로 남아 있고, 티베트인은 여전히 고지대의 에너지원으로서 보릿가루를 차로 반죽한 참파를 주식으로 삼는다.           p.125

 

세계를 먹여 살리는 모든 곡물에서 수천 년간 변함없이 유지되어 온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 삶의 여러 면모가 더 균질적으로 변했고, 온 세계가 사서 먹는 것이 갈수록 더 똑같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글과 우림에서, 밭과 농장에서, 모든 종류의 생물다양성의 상실이라는 위기는 지구 전체에서 전개되고 있다. BBC 기자이자 음식 저널리스트인 저자 댄 살라디노는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 해왔던 수많은 음식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저자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취재한 결과물인 이 책은 우리가 잊었거나 존재조차 몰랐던 총천연색의 음식들을 소개해주고, 세계화와 대량생산이 가져온 음식의 종말에 대해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위기에 처하다, 그리고 멸종 위험이 있다'는 개념은 대개 야생 생물에 해당하는 말로 여겨왔는데, '세계에서 사라져 가는 음식들'에 대한 진지한 접근부터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시작부터 632페이지라는 두께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는 각각의 음식에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연들이 화려한 향연의 풍미 넘치는 만찬처럼 펼쳐지고 있어 지루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수록된 '위기에 처한 음식들'은 야생, 곡물, 채소, 육류, 해산물, 과일, 치즈, 알코올, 차, 후식의 10가지로 분류되어 있다. 각각의 카테고리에는 2~4가지 정도의 음식들을 만날 수 있다. 하드자 꿀을 얻기 위해 탄자니아의 에야시 호수로 향하고, 베어 보리가 자라는 스코틀랜드의 오크니에 가고, 오히구 대두를 만나기 위해 일본의 오키나와로 가본다. 미국, 인도, 중국, 멕시코, 볼리비아, 대한민국, 영국, 덴마크, 우간다, 시칠리아 등등 그렇게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전 세계의 곳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음식들과 식재료들을 만나볼 수 있다.

 

 

 

다양성은 바깥 세계에서도 보존되어야 한다. 치즈가 처음 만들어지던 시절 이후로 인간은 자연의 숨겨진 힘에 고삐를 채워 초지에서 암소로, 젖에서 치즈로 옮겨놓았다. 치즈는 인간이 쓰는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것은 살아남게 해줄 뿐 아니라 문화를 형성하는 데도 이바지한 음식이었다. 20세기 동안 과학은 모든 것을 더 많이 약속했다. 더 많은 음식, 더 많은 안전, 더 많은 균질성을 기약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아주 많지만, 그 때문에 대체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상실되고 있다. 살레, 스티첼턴, 미샤비너 같은 치즈는 단순한 음식 이상의 존재다.         p.428

 

인간은 야생의 것을 먹는 존재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의 거의 모든 기간에 식물을 채집하고, 견과류와 씨앗을 모으고, 동물을 사냥하는 것이 곧 인간의 생존을 의미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지구에 사는 78억 명 가운데 섭취 칼로리의 대부분을 야생에서 계속 얻는 이는 고작 2000~3000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사회가 점점 산업화되면서 우리의 식생활도 달라졌고, 농경사회에 비해 야생 식품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온갖 가공 식품들이 우리의 식생활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그로 인해 야생의 식물과 동물, 그들의 서식지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 수렵채집을 하며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왜 야생 식품이 중요한지, 환경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현재의 위기를 헤쳐나갈 방법에 대해서는 모두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저자는 말린 카발자 씨앗을 보며 그 밀이 견뎌온 수천 년의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생겼다 사라진 수많은 제국, 살고 사랑하고 죽어간 무수히 많은 인간, 수천 번의 수확, 이 식물이 그 모든 일을 강인하게 겪어 냈다고 생각하면 어떤 음식도 허투루 생각하면 안 되겠다고 새삼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보물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뭔가를 잃기 전에는 그것이 소중한 줄 모르는 것이다. 수많은 위기에 처한 음식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결국 그들의 소멸로 인한 결과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올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위기에 처한 음식들은 현재 우리의 존재를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 그것들은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음식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안데스까지, 최고의 음식 저널리스트가 10년 넘게 전 세계를 현장 취재해 소개하는 위기에 처한 음식들을 만나 보자. 하나의 음식을 잃는다는 것은 우리와 세계를 연결해주는 고리를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문구가 소름끼치게 와 닿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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