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사라진 세계에서
댄 야카리노 지음, 김경연 옮김 / 다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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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가 사는 도시에서는 눈들이 사람들을 도와준다. 잠을 깨워주고, 양치를 시켜주고, 공부를 시켜준다. 뭔가를 선택하기 위해 고민할 필요없이 눈들이 모든 걸 알아서 골라주는 세상인 것이다. 그런데 눈들은 도와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감시도 하고 있다. 24시간 사람들의 주변을 맴돌면서 관찰하고, 도와주는 것이다.

 

하지만 빅스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읽고 싶은 걸 고를 수 없고, 친구들과 대화하며 놀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뭐든 혼자 스스로 하는 게 좋았던 빅스는 그래서 늘 외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감시하는 눈들을 피해 도망친 빅스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귀여운 작은 생명체를 만난 빅스는 깨진 벽의 틈 사이로 녀석을 따라간다. 낯선 공간으로 쿵 떨어진 빅스는 귀여운 내셕과 함께 아래로, 아래로,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간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낯선 지하 도시였다.

 

지하 도시에서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바로 도서관이라는 공간이었다. 빅스는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상하게 생긴 물건들'이 궁금했다. 빅스가 살던 도시에서는 '책'이라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빅스는 예술과 동물 책을 골라 읽고, 우정 이야기도 읽었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았고, 자유를 누리는 것이 행복했다. 며칠 후 빅스는 책들을 잔뜩 가지고 가족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눈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책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어린 빅스가 우연히 발견한 지하의 옛날 도시에는 도서관과 음악당이 있고, 곳곳에 예술품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어디에도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책이 사라진 세계'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책이 없다면 세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레이 브래드버리의 유명한 디스토피아 작품 <화씨 451>에서는 책이 금지된 미래가 나온다. 그곳에서는 책을 불태우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비판적인 생각을 갖게 만든다는 이유로 독서가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는 극단적인 설정이긴 하지만, 매스미디어에 중독되어 살아가며 독서를 멀리하고, 각종 디지털 서비스가 만들어내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통해 편하게 사는 데 익숙해져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게 되는 현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이유에서든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화면만 보고 있는 사람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작품은 그래픽 노블과 SF 그림책의 중간 형태로 어린이들에게는 빅스의 모험을 재미있게 보여주고, 어른들에게는 책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묵직한 여운을 남겨준다. 보통의 그림책에 비해 분량이 약간 많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속도감 있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글과 그림이 빽빽하지 않아 술술 페이지가 잘 넘어갈 것이다.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디지털 기기가 없는 시간 속에서 아이와 함께 여럿이 모여 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할 것이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지게 만들어 준다. 이 작품 속에서 처음으로 책을 읽게된 사람들이 조금씩 변해가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책이 왜 필요한지, 책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책이 어떻게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지를 책이 사라진 세계를 통해서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 책을 통해 점점 빠르게, 편리한 것만 찾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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