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닮았다 - 과학적이고 정치적인 유전학 연대기 사이언스 클래식 39
칼 짐머 지음, 이민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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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어린이에게는 자신의 존재가 그저 부모가 낳아 줘서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시점이 찾아온다. 어린이들은 어머니와 아버지 너머의 유전적 계보를 거슬러 올라간다. 부모에게는 부모의 부모가 있었고, 그 부모도 그랬고, 그렇게 가족이라는 나무의 가지가 기억의 지평선 너머로 뻗어 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모든 조상이 자신이 오늘날 살아 있는 이유의 일부임을.         p.215

 

길을 걷다 어린 자녀와 함께 있는 부모를 보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닮은 모습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아이가 부모를 닮는 것은 당연한 거겠지만, 정말 유전자의 힘이란 대단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만큼 유사한 모습에서 오는 순수한 감탄이다. 그렇다면 부모마다 자녀에게 각기 다른 형질을 물려주는 이유는 뭘까, 왜 어떤 사람은 키가 크고 어떤 사람은 키가 작고, 어떤 사람은 피부색이 짙거나 옅은 것일까, 궁금해진다. 유전은 겉모습이나 성향뿐만 아니라 질병도 아이에게 물려 준다. 보통 임신 초기에 태아에게 이상이 있는지 기형아 선별 검사를 하게 된다. 염색체 이상이나 위험도를 미리 알아보고 유전질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별 이상이 없는 걸로 나오지만, 혹시나 선천적인 이상 징후를 발견하게 된다면 부모로서 얼마나 막막한 기분일지 짐작이 된다.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칼럼니스트인 칼 짐머는 아내가 첫아이를 가졌을 때 산부인과 담당의를 통해 유전 상담사를 만나보게 된다. 물론 처음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유전 상담사와 대화를 나누며 유전 질환의 가능성에 대해 알게 되어 노심초사한다. 가족 중에 암으로 사망한 사람이 있는지, 뇌졸중을 앓은 이가 있는지, 생물학적 과거도를 살펴보려 해봐도 자신의 조상이라는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혹시 우리 아이에게 재앙이 될 다른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태어난 딸 아이 샬럿에게는 어떠한 유전 질환의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은 샬럿이 15세, 그리고 13세인 동생 베로니카가 있는데, 그는 두 딸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유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두 아이의 다른 피부 색조, 다른 홍채 색조, 샬럿의 암흑 물질 강박과 베로니카의 노래 재능에 대해서. 이는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닌데, 나 역시 자매가 있지만 외모부터 성격,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같은 집에서 같은 음식을 먹으며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 자매가 이리도 다른 유전 형질을 물려받게 되는 것일까.

 

 

 

다윈이 이 앵무조개를 봤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다윈이 생각한 유전은, 생물의 온몸에 퍼져 있는 제뮬이라는 유전 입자가 생식 세포를 통해 결합해 몸의 특질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과정이었다. 그의 범생설은 틀린 것으로 밝혀졌고, 생물학자들은 이 가설을 다윈이 범한 예외적 오류의 하나로 제쳐 두었다... 그런데 지금 과학자들이 해저에 서식하는 조개가 제뮬 같은 성격의 유전자를 이용해 부모의 형질을 미래 세대로 전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p.546

 

칼 짐머가 쓴 <진화>라는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적이 있다. 두툼한 페이지 두께가 무색하게 굉장히 술술 잘 읽히는 책이라 누구나 부담없이 '진화론'에 대해, 다윈과 '종의 기원'에 대해 읽을 수 있을 만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진화론은 교과 과정에서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전공자가 아닌 이상에야 접하기 어려운 데다가, 생물학 교과서나 <종의 기원> 같은 고전을 보더라도 높은 난이도에 좌절하기 십상인데 말이다. 하지만 칼 짐머는 구체적이고 엄밀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탄탄한 줄거리와 풍부한 스토리텔링으로 마치 서사 문학을 읽는 것처럼 '재미있게' 진화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래서 이번 책도 그런 칼 짐머가 썼기에 880페이지라는 무시무시한 벽돌책임에도 불구하고 선뜻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유전학의 탄생부터 우생학과 인종주의 같은 유사 과학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웃음이 닮았다(She has Her Mother’s Laugh)'는 제목부터 흥미로운데, 이는 저자의 딸과 아내가 웃는 모습이 닮았다는 데서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무사히 태어난 아기 샬럿의 얼굴 사진과 아내의 아기 시절 사진을 나란히 두고 그 닮은 모습에 경탄한 저자는 딸의 웃음소리에 유전 형질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책은 '유전'이라는 말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던 1700년대 전부터 시작해, 1800년대에 이르러서 유전이라는 개념이 과학적으로 구체성을 띠기 시작하고, 1900년대 초에 이르러 마침내 유전학이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2000년대 초에는 기이한 미생물 유전 유형 하나가 드러난 덕분에, 멘델의 유전 법칙 말고도 또 다른 유전 경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게 된다. 칼 짐머는 이 책에서 바인랜드 훈련 학교에 직접 찾아가 여러 세대에 걸친 유전 이론에 영향을 미친 사례들을 짚어보고, 과학의 최전선에서 활약해 온 수많은 전문가들을 직접 면담하는 등 자신의 경험과 과학적, 역사적 분석을 완벽하게 조합해 유전 과학이라는 복잡한 학문을 통찰력 있게 조망하고 있다. 유전자와 진화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책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스펙타클한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 과학에 대해서 칼 짐머보다 더 재미있게 잘 쓰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흥미로운 책이다. 최고의 과학 저널리스트가 쓴 압도적인 유전학 연대기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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