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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유
J. S. 먼로 지음, 지여울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4월
평점 :
사고가 있기 전에 케이트는 경찰에서 민간인 신분의 '초인식자'로 일을 했다. 인구의 2퍼센트는 사람의 얼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안면 인식 장애, 즉 안면실인증이라 불리는 병을 앓고 있다. 그리고 그 정반대 지점에는 '초인식자'라고 불리며 사람의 얼굴을 절대로 잊지 않는 1퍼센트가 존재한다. 케이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실제로 솜씨가 아주 뛰어났다. 한번은 그저 눈만 보고 용의자를 분간해내기도 했을 정도였다. p.23
한 번 본사람의 얼굴을 절대 잊지 않는다는 ‘초인식자’ 케이트는 경찰에서 민간인 신분으로 일하며 수많은 용의자들을 식별해 수사에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여섯 달 전 일어난 교통사고로 뇌를 크게 다쳤고, 현재는 병원에서 만나 연인이 된 젊은 사업가 롭의 자상한 보살핌을 받으며 요양 중이다. 어느 날 케이트는 롭과 대화를 나누다 그가 오래 전 자신의 도플갱어를 만난 적이 있었고, 그 존재를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첨단 기술 사업가로 이름을 날리는 그가 도플갱어라는 미신을 두려워한다는 것이 의문이었던 케이트는 며칠 뒤 그가 자신이 알던 롭이 아니라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사람같다고 느끼게 된다. 혹시 그가 롭이 두려워하던 도플갱어가 아닐까 의심하게 된 케이트는 점점 혼란스러워지는데... 과연 이것은 케이트의 망상인 것일까, 아니면 회복되어 가는 케이트의 뇌가 보내는 경고인 것일까.
롭은 영국에서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신생 기업의 창업주이자 뇌와 기계를 상호작용하게 하는 ‘직접 신경 인터페이스’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냉장고나 집의 잠금장치 등 거의 모든 곳에 첨단 기술을 적용하고 있는 그는 왜 '도플갱어'라는 미신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혹시 도플갱어가 미신이 아니라 실재하는 존재라면? 그리고 그가 만난 적이 있다는 그 도플갱어가 현실에 진짜 나타나 그가 이룬 모든 것들과 집, 회사, 그리고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들을 전부 빼앗아 가게 된다면 말이다. 그렇게 깨닫고 나서 보니 케이트는 그의 모든 점들이 자신이 알던 롭의 모습과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어를 잘 하지 못해서 케이트가 가르쳐 줘야 했던 롭이 능수능란하게 프랑스어로 언론에서 인터뷰를 한다던가, 평소에 절대 마시지 않던 음료를 카페에서 마신다던가, 영상 통화 중에 무심코 지은 표정에서 그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인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케이트의 불안과 의심은 점점 더 심해지고, 그즈음부터 그녀에게 크고 작은 사고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는데, 과연 케이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일까.
"당신도 알겠지만 누군가를 흉내낸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야." 제이크가 앉은 자리에서 몸을 똑바로 세우더니 탁자 위에 놓인 케이트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갠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그렇게 간단히 차지할 수는 없어. 누군가의 신분을 갈취한 다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 사람으로 살아가다니,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야.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 일란성 쌍둥이라면 혹시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롭한테는 쌍둥이 형제 같은 건 없어. 그렇지 않아?" p.322
자신의 도플갱어와 마주치는 것은 불길한 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도플갱어가 실재 존재하는 지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된 것이 없으므로, 그 상징이나 의미는 조금씩 다르게 속설로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보통 자신의 도플갱어와 마주치게 되면 한 쪽이 죽게 된다는 속설로 공포영화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오싹하기 그지 없다.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또 다른 존재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해 보면 말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자아분열과 같은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보기도 한다. 이 작품 속에서 케이트가 겪게 되는 증상을 '카그라스증후군'이라고 하는 망상증으로 보는 것처럼 말이다. 한때 얼굴 인식에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해주었던 성능 좋은 방추상회 때문에 도플갱어를 본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고 하면, 그럴듯하게 설명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 작품은 케이트가 사고에서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도플갱어 이야기에 집착하게 되는 초반부에 이어, 사실 교통사고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증거가 나오면서 본격적인 스릴러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뇌에서 얼굴을 인식하는 부분인 방추상회가 뛰어난 인물로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과학수사과의 베아테 뢴이라는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었다. 방추상회라는 단어 자체를 그때 처음 알게 되었었는데, 수사관 중에 정말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범죄자 검거에 아주 큰 도움이 되겠다 생각했었다. 얼굴을 알아보는 것만으로 용의자를 특정하고, 그 중에서 범인을 잡아낼 수만 있다면 수사에 굉장한 역할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J. S. 먼로는 비슷한 수천 개의 얼굴을 구분하고, 마주친 사람의 얼굴은 모조리 기억하는 능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뇌와 기계를 상호작용하게 하는 기술을 등장시키고, 도플갱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더해 한층 더 복잡하고 스릴 있는 심리 스릴러를 탄생시켰다. 최첨단 기술과 비과학적인 미신이 공존하는, 독특한 심리 스릴러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