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면 그녀는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4월
평점 :
품절


 

사랑은 감기와 비슷하다. 감기 바이러스는 어느새 몸속으로 침투하고, 알아챘을 때는 이미 열이 난 상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열은 사라져간다. 열이 났던 게 거짓말처럼 여겨지는 날이 온다.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이 그 순간이 찾아온다. 그 무렵, 하루는 말했다. 나는 언제까지고 후지 곁에 있을 거야.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 말을 되풀이 했다. 그러나 후지시로와 하루만 예외일 리는 없었다.         p.58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백화>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던 가와무라 겐키의 대표적인 연애 소설 <4월이 되면 그녀는>이 옷을 갈아 입고 개정판으로 나왔다. 6년 전에 출간 당시에 읽었던 작품을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이번에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결혼을 앞둔 남자가 9년 전에 헤어진 과거의 연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으면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사랑이 점차 사라져 가는 세상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정신과 의사인 후지시로는 수의사인 야요이와 곧 결혼할 예정이다. 그들은 도심에 자리 잡은 고급맨션에서 삼 년째 함께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시절 첫사랑에게서 편지가 한 통 온다. 그녀는 볼리비아의 우유니라는 새하얀 소금호수로 에워싸인 도시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체코 프라하,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 인도의 카냐쿠마리를 거치며 그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를 기점으로 대학 사진부 동아리에서 처음 만나 연인이 되는 후지시로와 하루의 이야기와 첫사랑과 갑작스레 멀어지고 이후 수 년간 제대로 된 연애를 할 수 없었던 후지시로가 현재의 연인 야요이를 만나게 된 스토리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전개된다. 후지시로가 야요이를 만나던 당시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지만 직전에 파혼을 하고 그와 만나기로 했었다. 그리고 삼 년의 연애 후 결혼을 앞두고 있는 지금, 그녀는 또 다시 결혼식을 앞두고 사라져 버린다. 사라져버린 약혼녀, 아이없이 섹스리스 부부로 살고 있는 그녀의 여동생, 출중한 미모를 가지고 있지만 남자와 연애라는 감정에 전혀 관심이 없는 동료 나나, 그리고 첫사랑의 실패 이후 자신보다 상대를 더 생각하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후지시로를 통해서 '연애가 사라진 세상'이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다.

 

 

 

왜 타인을 사랑할까. 왜 그 감정이 사라져가는 걸 막을 수 없는 걸까. 모든 현인이 도전해온 미해결된 난제. 언젠가 인간을 능가한 인공지능이 거기에 해답을 내주는 날이 올까. 영화 속에서는 노란 셔츠 남자가 옥상으로 올라가 해가 뉘엿뉘엿 더디게 지는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모든 걸 잃은 남자는 편지를 쓴다. 옛날 아내에게. 자기 마음을 전하기 위해. 그를 에워싸듯 우뚝 솟은 고층빌딩 창들이 하나 또 하나 오렌지색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p.147

 

누구나 한때 사랑이 영원하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극중 하루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이 한순간이라는 것도 조금씩 알아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빠지면, 섹스하고, 결승점으로 결혼하게 되어 있는 게 대부분인데, 이 작품은 그런 사회 통념에 대해 전면으로 부딪치고 있다.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환상이라고, 함께 사는 그 혹은 그녀가 상대를 계속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확인하느냐고. 그저 어느 정도 연령이 되면 결혼하고, 그 후에는 서로만 사랑하며 끝까지 가족을 지키며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 일종의 규칙처럼 되어 버린 것 아니냐고 말이다.

 

잃어버린 사랑과 확신할 수 없는 사랑 앞에서 고민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영원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해 그리고 있다. 애초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한순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한순간이 영원히 계속될 거라고 믿고 평생 누군가와 사랑을 한다는 것부터 말이 안되는 일인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남자와 여자가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에 빠지고, 평생 동반자로 서로를 사랑하는 게 전제가 되는 건 이상한 건 아닐까. 누구랑 연애를 하든 다다르는 종착지는 똑같다고, 극중 인물을 통해 작가는 말하고 있다. 달과 태양이 겹쳐지는 한순간, 사랑하는 서로의 마음이 겹쳐진, 일식 같은 순간은 말그대로 기적같은 찰나에 불과하다고. 누군가 그러지 않았던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부터 믿을 수 없는 기적이라고. 누군가에게는 생애 단 한번만 찾아오기도 하고, 아예 찾아오지 않기도 하는 그 기적을 우리는 왜 유지시킬 수 없는 걸까. 살아있는 한 사랑은 떠나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감정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의 마지막 즈음에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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