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사도들 - 최재천이 만난 다윈주의자들 드디어 다윈 6
최재천 지음, 다윈 포럼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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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축구 경기에서 승리하겠다는, 책을 한 권 쓰겠다는, 현악 사중주를 하나 작곡하겠다는, 또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겠다는 자기만의 삶의 목표를 세웁니다. 모두 다 인간이 세울 수 있는 가치 있는 목표들입니다. 우주의 의미에 대한 당신의 근심이 이들을 방해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나는 여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어쩌면 우주에는 아무 목적도 없을지 모른다. 내 삶도 어쩌면 궁극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름다운 정원, 멋진 서재, 훌륭한 아내 또는 남편 그리고 아이들이 있어서 내 삶은 무의미하지 않다."           p.174

 

인류를 뒤흔든 과학적 발견이야 많지만 다윈의 진화론만큼 심하게 세상을 흔든 것은 없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발견 정도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게다가 다윈의 이론은 인간 자신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시각에 혁명을 일으켰다. 다윈은 두 가지의 유사한 종 사이의 경쟁으로 인해 하나가 멸종됐고, 오늘날 살아 있는 동물들은 과거에 살았던 모든 종에서 이런저런 식으로 선택된 종의 후예라고 말했다. 신이 자연과 모든 생물을 설계했다고 주장하는 자연신학이 주류이던 19세기 초반, 인간이라는 존재가 신이 만들어 낸 존재가 아니라 진화의 산물인 수많은 종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그의 주장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충격적이었을지 짐작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종의 기원>이 나온지 164년이 지난 지금, 왜 여전히 다윈이 중요한 것일까.

 

이 책은 이화 여자 대학교 에코 과학부의 최재천 석좌 교수가 우리 시대의 대표 다윈주의자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인터뷰집이다. 비전문가가 묻고 전문가가 답하는 형식의 일방적 인터뷰를 묶은 책이 아니라, 사도들 간의 진솔한 담론집이라는 데 그 가치가 있다. 최재천 교수는 BTS의 팬덤인 ‘아미’가 다윈에게도 있다고 말한다. BTS의 아미는 단순히 그들의 음악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BTS가 음악에 부여한 메시지를 체화한 다음 콘텐츠를 재생산해 적극적으로 전파해 BTS를 비틀스에 비견되는 세계적인 그룹으로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재야의 생물학자였던 다윈이 과학사에 큰 획을 그을 수 있게 된 배후에도 그를 둘러싼 팬덤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그의 제자와 사도를 자처하며 과학 분야 곳곳에서 활약하는 팬덤이 없다면 다윈과 그의 진화론은 확산되지도, 발전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이 바로 다윈의 아미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종의 기원> 출간 100주년이었던 1959년으로 돌아가 보면, 그때까지도 그 누구도 암컷이 자신의 짝짓기 상대를 선택한다는 성 선택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런 가설이 나오기도 했죠. 포식자가 수컷을 잘 잡도록 눈에 띄게 만듦으로써 나쁜 유전자를 제거하도록 한다는, 즉 종을 이롭게 한다는 가설이었죠. 그러나 이것은 몇 가지 계산만 해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잘못된 가설이었습니다. 토머스 헌트 모건이 그 가설을 지지했던 걸로 알고 있고, 아마 헉슬리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p.325

 

다윈의 삶과 업적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원전을 직접 읽는 것이겠지만, 사실 <종의 기원>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읽기 어렵다는 악명이 높은 책이기도 하다. 다윈 시대의 생명과학 지식과 용어에 대한 이해 부족, 엄청나게 다양하고 또 매우 생소한 생물들에 대한 관찰 결과와 수많은 인물들의 조사 결과가 인용되어 있으나 이들을 거의 알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본문에 소제목이 없어 읽어 내려가기가 매우 힘들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 등이 그 요인이다. 나 역시 몇 년 전에 <종의 기원> 초판을 주석과 함께 완역해 굉장히 현대적으로 해석했다고 하는 버전을 읽어 보았지만, 주석이 무려 2,200여 개에 달하는 그 책도 전공자가 아닌 일반 독자가 소화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오히려 이 책을 통해서 만난 평생 다윈을 붙잡고 생물학부터 철학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치열하게 연구해 온 이들의 경험과 통찰에서 우러나오는 생생한 이야기들이 다윈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는 듯한 느낌이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50년 가까이 다윈 핀치(되새류)를 연구한 피터 그랜트와 로즈메리 그랜트 부부, 과학사학자이자 철학자인 헬레나 크로닌, 진화 심리학의 최전선에서 인간의 인지와 언어를 연구하는 스티븐 핑커, 유전학의 관점에서 다윈주의 통찰을 재해석하고 발전시킨 리처드 도킨스, 생물 철학자 대니얼 데닛, 식물학자 피터 크레인 등등 최채천 교수와 이들의 대화를 읽으면서 진화론에 대해서, 그리고 도대체 왜 다윈이 중요한지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최재천 교수는 인터뷰를 위해 만난 모든 이들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왜 다윈이 중요한가?"에 대해 묻는다. 그에 대한 학자들의 답변들은 모두 제각각 흥미로웠지만, 열한째 사도 제임스 왓슨의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그가 누구보다 간단하게 세상을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다윈 없이는 생명을 이해할 수 없죠. 그리고 생명은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라는 말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게, 다윈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진화론이 궁금하다면, 찰스 다윈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드디어 다윈' 시리즈는 <종의 기원>,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다윈 지능>, 그리고 <다윈의 사도들>에 이어 앞으로도 계속 될 예정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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