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에디터스 컬렉션 15
메리 셸리 / 문예출판사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녀석은 이제는 살인자의 손길을 느끼지 않아. 잔디가 그 아이의 부드러운 몸을 덮으면, 녀석은 더는 고통을 느끼지 않을 거야. 그러니 녀석은 더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야. 산 사람들에겐 흘러가는 시간만이 위로가 될 거야. ‘죽음은 악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사랑하는 대상의 영원한 부재에도 절망감을 초월한다’ 따위의 스토아철학자들의 격언을 굳이 꺼낼 필요도 없겠지. 카토도 죽은 형제의 시신 앞에서 흐느끼지 않았나.        p.128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이미 다양한 버전으로 소장하고 있고, 여러 번역본으로 읽었지만, 이번에 나온 문예출판사의 '에디터스 컬렉션' 버전은 정말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 DC 코믹스, 마블 코믹스의 전설적인 일러스트레이터 버니 라이트슨이 7년에 걸쳐 완성한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펜화 작품 45점을 더한 아름다운 버전이기 때문이다. 정말 디테일하고 섬세한 묘사가 일품인 삽화들은 원작의 깊이를 더해주고, 장면들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나 이번 버전이 특별한 이유는 작가의 의도가 더 잘 보존된 1818년 초판본을 우리말로 옮겼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은 1818년에 익명으로 출간된 초판과 메리 셸리가 초판을 수정해 1831년에 출간한 개정판, 두 가지 판본이 있는데, 여성 작가의 창작 활동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익명으로 출간한 버전이 더 날카롭고 대담하다고 평가받는다고 하니 말이다. 또한 작품의 착상과 집필 과정, 작가의 의도가 드러나는 ‘스탠더드 노블스 판 저자 서문’과 역자의 ‘작품 해설’을 수록해 작품의 이해를 도왔다. 

 

 

그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나는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소. 그토록 강하고 고결하고 훌륭한 인간이 그렇게 사악하고 비열하단 말인가? 인간은 어느 때는 순전히 악의 근원에서 태어난 자식 같기도 하고 어느 때는 고귀하고 신과 같은 존재로 보이기도 했소. 위대하고 고결한 인간이 되는 것은 감각이 예민한 존재에게 있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 같았소. 많은 역사적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비열하고 사악한 인간이 되는 것은 가장 비천한 타락, 눈먼 두더지나 나약한 벌레보다도 더 비참한 지경의 인간처럼 보였소.           p.228

 

<프랑켄슈타인>은 영화로 여러 번 각색되었을 뿐 아니라 이후에 등장한 여러 과학소설과 공포영화에 큰 영향을 끼친, 최초의 과학소설이다. 극중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해냈고,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한 메리 셸리는 그야말로 괴물 같은 소설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이후에 등장한 거의 모든 미치거나 사악한 과학자 캐릭터의 전형이 되었으니 말이다. 1818년 메리 셸리가 맨 처음 이 작품을 익명으로 발표했을 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스물한 살이었다. 그녀는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묘한 두려움을 건드려 오싹한 공포를 일깨우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무서워서 주위를 둘러볼 수도 없게 만드는, 읽으면서 피가 얼어붙고 가슴이 두근대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그녀의 의도대로 놀라운 작품이 탄생했고, <프랑켄슈타인>은 1931년에 영화로 제작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 처음부터 악한 존재였던 것은 아니다. 보기 흉한 모습 때문에,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인간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핍박 받으며 고립되어 살게 만든 사회가 그를 진짜 괴물로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괴물이 저지른 행동들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분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을 만하니 말이다. 비록 고통만 더해 가는 삶이라도, 산다는 것이 괴물에게도 소중한 일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애초에 선하고 따뜻한 존재였으나, 절망으로 인해 악마가 되고 만 존재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생명 과학과 생명 복제 기술이 발달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히 공포를 불러오는 괴물로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 말이다.

 

고전이 왜 끊임없이 다시 책으로 출간되고, 왜 여러 매체를 통해서 계속 변주되는 것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프랑켄슈타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원작을 읽지 않았더라도 친숙한 캐릭터와 스토리이지만, 이번 기회야말로 원작 소설을 제대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메리 셸리의 소설과 버니 라이트슨의 아름다운 삽화가 만나 그 어떤 영화보다도 흥미진진하고, 그 어떤 책보다도 세련되고 우아하며, 그 어떤 음악, 뮤지컬 등으로도 표현해내지 못할 감동을 안겨주는 버전이 탄생했으니 말이다. <프랑켄슈타인>이 궁금했다면, 꼭 이번 에디터스 컬렉션 버전으로 만나보길 적극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