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버지니아 울프 - 한 사람의 인생이 모두의 이야기가 되기까지
수사네 쿠렌달 지음, 이상희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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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보통의 독자>에서 이렇게 썼다.
누군가 우리에게 지금 영국에 존재하는 우리들의 작품이 100년 뒤에도 남아 있을 것 같으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거기에 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어떤 책들은 그럴 것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어떤 책들은 그 존재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p.68

 

버지니아 울프의 삶은 그의 작품만큼이나 드라마틱했다. 남성 중심 사회에 살면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졌고, 페미니즘 비평의 선구자이기도 했으며, 출판사를 운영하며 당대의 작가들을 발굴했고, 모더니즘 소설의 실험적인 작가로서 비평가와 독자 모두에게 인정받았다. 하지만 부모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딸이었으며, 만성적인 정신 분열증을 평생 겪었고, 결국 스스로 강으로 걸어 들어가 생을 마감했다.

 

평소에 버지니아는 별일 없는 한 매일같이 혼자 산책을 나서곤 했다. 그날 남편과 친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거실에 두고 집을 나섰을 때도, 이웃 주민 몇 명이 그녀를 목격했지만 평소처럼 산책 중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 그녀가 큼직한 돌멩이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갈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강물로 뛰어들어 세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남긴 글은 여전히 당대의 현실 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빛나고 있다.

 

이 작품은 독일의 일러스트레이터 수사네 쿠란델이 감각적인 수채 일러스트를 통해 그려낸 버지니아 울프의 그래픽 노블 버전 전기이다. 만화에서 흔히 사용되는 전형적인 프레임을 벗어나 이미지와 텍스트가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어 '의식의 흐름'대로 읽어낼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발전시킨 새로운 서술 기법처럼 말이다.

 

보통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릴 때, 침울하고, 핏기 없는 안색의 신경쇠약증 환자 같은 이미지를 먼저 생각하게 마련인데, 이 책의 아름다운 수채화들은 그 어둡고 우울한 이미지에서 벗어난 모습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어 더욱 의미가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상징>에서 이렇게 썼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더 이상 그 어떠한 것도 느낄 수 없다. 나는 머리를 손질하지 않는다. 손톱도 깎지 않는다. 대체 왜 나는 이 모든 것을 쓰는 것일까? 왜 말도 안 되는 것을 쓰는 것인가?
나중에 그녀는 원고에서 이 구절을 삭제했다.         p.120

 

버지니아 울프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여름이면 그들은 콘월 지방의 세인트이브스의 톨랜드 하우스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곳은 버지니아의 유년 시절 중 가장 행복했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섯 살이던 버지니아는 그곳에서 이부 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한 경험으로 거울에 대항 공포를 가지게 된다. 열세 살 때 엄마가 돌아가셨고 슬픔에 잠긴 가족들 사이에서 아무런 감정도 표현하지 않는 그녀에게 다들 정상이 아니라는 말을 해댔다.

 

이 작품은 그렇게 버지니아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와의 애증 관계로 고통 받았던 10대 시절과 작가가 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던 20대를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다. 마침내 글을 쓰게 되고, 독학으로 지성을 쌓아 젊은 지식인들의 모임인 블룸즈버리 그룹에서 그들과 교류하고, 레너드 울프와의 결혼 생활과 출판사를 만들어 남편과 책들을 출간하던 시절을 거쳐 생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특히나 버지니아 울프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 내밀한 일기와 에세이, 편지 속 문장들을 다양하게 인용하며 그녀의 삶을 그려내고 있어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수사네 쿠렌달은 버지니아 울프가 무언가를 읽거나 글을 쓰는 장면들이 유달리 많이 그렸다. 아홉 살 때 집안에 일어나는 일들을 담아 잡지를 만들었던 일, 다양한 장소에서 작품을 쓰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들, 킹스칼리지에서 그리스어 수업을 듣는 장면과 헨리 제임스의 작품에 대해 비판적인 평론을 쓰는 장면 등등... 끊임없이 뭔가를 계속 쓰는 삶이 책 속에 가득 담겨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들에게 '자기만의 방'과 '매년 500파운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자기만의 방>이 출간된 것은 1929년이다. 그로부터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성들의 삶은 과연 자유로워졌을까. 여성들의 위상이야 확실히 당시보다는 나아졌겠지만, 여전히 가부장제와 불평등, 억압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나 기혼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이 있는 경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며, 매년 500파운드에 해당되는 금전적인 지원 역시 전무할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버지니아 울프의 목소리는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정신적 자유를 나타내는 구호처럼 당대의 현실 속에 살아 있다. 이는 우리가 지금 이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수채 일러스트를 통해 재구성된 버지니아 울프의 계속 쓰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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