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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유품정리
가키야 미우 지음, 강성욱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평점 :
품절
도둑도 아닌데 살금살금 걸을 필요는 없지만 천정 부근에 시어머니 혼령이 떠다니고 있는 듯한 기분을 떨쳐 낼 수 없었다.
부재일 때 내가 사는 곳을 남들이 보는 건 누구라도 싫기 마련이다. 차를 같이 마시는 친한 친구가 와도 기껏해야 방안을 대충 둘러보는 정도일 테다. 그런데 원래는 남이던 며느리인 내가 서랍 속과 옷장과 벽장 안까지 전부 보려 한다. 하물며 멋대로 필요 불필요의 판단을 내리고, 쓸 만한 물건은 가져가고 필요 없이 여기는 물건은 가차없이 버리려 한다. p.9~10
<70세 사망법안, 가결>, <후회병동>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가키야 미우의 신작이다. 두 작품 모두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실재하는 현실을 보여주며 노후에 대해,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이야기였다. 이번 작품은 홀로 살던 시어머니가 돌연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찾아온 며느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도와줄 사람은 없고, 업체를 부르자니 비용이 만만치가 않고, 하루라도 빨리 정리해서 방을 빼지 않으면 비싼 월세를 계속 내야 했다. 하지만 집안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방대한 양의 물건에 아연실색하고, 그 와중에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에서 이상한 일들이 이어진다. 전원을 켜지 않은 코다츠가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고, 열어 두고 간 문이 꽉 닫혀 있고, 시든 야채와 물건들이 사라진 것이다.
마치 어딘가 수상한 사람이라도 숨어 있는 듯한 기분을 지우지 못한 채, 며느리 모토코는 홀로 유품정리를 하느라 고군분투한다. 누군가 만능키를 가지고 있는 건지, 전문털이범이라도 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기묘한 일이 계속 생겼지만 어차피 훔쳐가도 곤란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고, 기분이 꺼림칙하고 혼란스러운 그대로 모토코는 물건들과 가구들을 정리해나간다. 시어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은 점점 커졌고, 왜 쓰지도 않은 물건을 계속 사들이고, 쌓아 두었던 것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일이 의외로 많아."
후유미가 돼지고기와 베이컨을 넣자 치직하는 소리가 났다.
"부모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죄 많은 존재이기도 해"라고 모토코가 말했다.
"맞아. 내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어. 정말로 성가신 존재야."
후유미는 그렇게 말하지만 어머니를 용서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상반된 마음을 청산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괴로워할지 모른다. p.171
시어머니 집에는 남편의 초등학교 교과서, 시아버지의 40년 치 월급명세서 다발, 50권이 넘는 앨범과 유통기한 6년이 넘은 샐러드유, 잔뜩 쌓여 있는 신문과 잡지와 골판지 등, 뜯지도 않은 통신판매로 구매한 물건들, 식기장에 빼곡히 들어 있는 그릇들... 어디서부터 손대면 좋을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물건들로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접이식 밥상, 석유난로, 에어컨, 청소기, 장식장 세탁기 텔레비전, 냉장고 등등 부피가 큰 전자제품 집기들도 집안을 점령하고 있다. 스무 평 남짓한 공간에 시어머니 혼자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집을 정리하는 내내 모토코는 화가 나서 있지도 않은 시어머니에게 원망을 해대고, 반지 하나만 남긴 채 유품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세상을 떠난 친어머니와 비교를 하게 된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친어머니가 남긴 두 개의 일기를 통해 자신이 몰랐던 '두 어머니'의 삶과 마주한다.
인간이 평범한 일상 속에 얼마나 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인 작품이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고, 물건들은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짐이 될 수밖 없을 것이다. 극중 며느리는 유품을 정리하며 생전에는 알지 못했던 시어머니의 모습들을 알아 가며 유머러스한 분위기의 긍정적인 결말로 마무리가 된다. 하지만 가급적 죽음이 다가오기 전에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해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우리의 삶이 무엇으로 이루어져있는지,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