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여행하는 수렵채집인을 위한 안내서 - 지나치게 새롭고 지나치게 불안한
헤더 헤잉.브렛 웨인스타인 지음, 김한영 옮김, 이정모 감수 / 와이즈베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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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걸어온 확실한 방향은 다음과 같다. 초기 인간이 환경을 지배하기 위해 서로 협력함에 따라 이내 인간의 가장 큰 경쟁자는 서로가 됐다. 협력을 통해 생태적 우위를 점했고, 얼마 후에는 같은 종의 다른 집단과 경쟁하는 일에 골몰하게 됐다. 집단 간 경쟁은 갈수록 정교하고 직접적이며 장기화됐다. 결국 현대 세계에 들어서는 거의 모든 곳을 점령하게 됐다. 생태적 우위와 사회적 경쟁. 이 두 가지 과제를 오가며 인간은 생태적 지위 개척의 전문가가 됐다. 생태적 지위의 전환에 있어 우리는 궁극의 달인이다.            p.76

 

우리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불행하고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다. 빈부차이도 없고, 계급도 없었던 구석기인들의 삶은 신석기시대에 농사를 지으면서 끝이 났고, 그로 인해 빈부차이와 계급이 탄생했다. 이후 산업혁명으로 인해 80억 명에 가까운 인구가 풍요롭게 살면서 장수하고 있으며, 현대인들은 근력을 쓰는 일이 구석기인보다도 적어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 이 책의 저자인 진화생물학자 헤더 헤잉과 브렛 웨인스타인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수렵채집인의 지혜를 배우라고 조언한다.

 

진화와 관련한 거의 모든 분야의 최신 이론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놀랍게도 진화 생물학 책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부터 시작해 젠더, 음식, 양육, 의학, 교육, 문화 등 현대의 광범위한 문제들을 다루며 더 나은 삶을 위한 접근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해당 내용에 맞는 현실적인 팀들이 담겨 있다. 의학을 다루는 장이 끝나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여라, 몸을 매일 움직여라, 할 수 있다면 의료 문제를 약으로 해결하지 말라 등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접근법'이 수록되어 있다. 음식에 대한 장이 끝난 뒤에는 GMO 식품을 피하라, 아이들을 다양한 자연식품에 노출시켜라, 식품을 성분으로 환원하지 말라 등에 대한 방법이, 아동기와 양육법에 대한 장에서는 아이에게 물리적 세계와 씨름하도록 장려하라, 반응하지 않는 무생물에게 아이를 맡기지 말라, 약속은 끝까지 지켜라, 일반적인 양육의 기대치에 굴복하지 말라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마치 인문학의 탈을 쓴 자기 계발서처럼 느껴지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다.

 

 

 

함께 관계를 쌓아 올리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긴 시간, 이를테면 현장 학습은 모든 교수가 경험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경험해야 할 사치다. 평생 칭찬만 받으면서 살아왔을 학생들에게 "아니, 그건 틀렸어. 그 이유는 말이야..."라고 기꺼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실수를 기꺼이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생각이 출현하는 과정, 생각을 다듬고 시험하는 과정, 그런 후에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는 실제 과정을 모형화한다면 학교 교육과 교과서가 오랫동안 주입해온 전형적인 학습 모형에서 학생들은 멀어질 것이다.           p.297

 

부부이자 연구 파트너인 헤더 헤잉과 브렛 웨인스타인은 에버그린주립대학에서 15년간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쌓아올린 진화생물학 지식을 토대로 이 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이 책에서 추구하는 것이 '틈새가 없고 신앙에 기대지 않으며 모든 차원의 패턴을 엄밀하게 묘사하는, 관찰 가능한 세계에 대한 단 하나의 일관된 설명'이라고 말한다. 덕분에 이 책은 든든한 과학적 체계를 바탕으로 수많은 질문에 대해 답을 하고, 그것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복잡한 유전적·문화적 진화를 이해하는 도구로 두 저자가 제시한 ‘오메가(Omega, Ω) 원칙’도 흥미로웠다. 오메가 원칙이란 ‘후성적 조절자(예를 들어 문화)는 유전자보다 더 유연하고 더 빠르게 적응한다는 점에서 유전자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과 후성적 조절자는 유전체에 도움이 되도록 진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최초로 제시한 '밈의 진화'를 언급하고 있는 부분도 흥미롭게 읽었고, 값이 비싸고 오래 지속되는 문화적 특성은 적응적인 것이며, 문화의 적응 요소는 유전자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는 결론도 인상적이었다.

 

두 저자는 수면, 성관계, 식단, 성역할, 양육 같은 개인의 영역에서부터 의학체계, 학교와 교육, 정치에 이르기까지 한 울타리에 묶인 사람들, 즉 전체 인류의 영역에 이르는 전 과정을 살펴 본다. 그리고 현대사회 사이에서 빚어지는 팽팽한 긴장과 잘못된 관념의 오류를 짚어 낸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기반에 인류의 진화적 진실이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에, 진화 입문서로도 좋을 것 같다. '진화라는 차별 없는 렌즈'를 통해 이 시대의 광범위한 문제를 살펴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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