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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의 나라 - 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아이에 관한 기록
앤 패디먼 지음, 이한중 옮김 / 반비 / 2022년 9월
평점 :
나는 언제나 가장 볼만한 것은 중심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다른 무엇과 만나는 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해안선, 기상전선, 국경이 좋다. 이런 곳에서는 흥미로운 충돌과 부조화가 일어나며 경계에 서 있으면 어느 한 쪽의 중심에 있을 때보다 양쪽이 더 잘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문화일 때는 특히 더 그렇다고 생각한다. 9년 전 머세드에 처음 갈 때 나는, 내가 조금은 아는 미국의 의료 문화와 내가 전혀 모르는 몽족 문화 사이에서 양측의 십자포화에 피격당하지 않는다면 그 둘을 서로 어떤 식으로든 비출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p.18
<서재 결혼시키기>의 저자 앤 패디먼의 데뷔작으로 국내에는 2010년에 소개되었었는데, 이번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개정판은 사실관계에 관한 저자의 전면적인 수정과 새로운 후기를 더한 15주년 개정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이 작품은 라오스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몽족의 이민자 가족과 미국의 의료 체계 사이의 갈등을 무려 9년에 걸쳐 취재한 르포르타주이다.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1980년대의 미국에서 벌어진 것이지만, 다른 문화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2022년 현재에도 사라지지 않은 문제이므로,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리 부부는 1975년 라오스가 공산 세력에 완전히 넘어가면서 살던 땅을 떠나게 된 15만 몽족 가운데 하나이다. 리 부부의 열네 번째 아이인 리아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현대식 공립병원에서 태어났다. 리 부부는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데다 주변에 몽족 언어를 아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병원에서 아기를 낳은 것은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미국 의학 자체에 의문을 품게 된 것은 리아가 병원에 자주 가게 되면서부터였다. 몽족 사람들은 다양한 원인 때문에 병이 난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이 꼽는 병의 가장 큰 원인은 혼을 잃어버려서이다. 특히 신생아의 생명의 혼은 떠나버리기 쉽다고 생각해, 아기를 기를 때 조심하는 부분이 많았다.
메울 수 ‘없는’ 간극이었다고? 나는 리아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리 부부가 MCMC 의료진과 처음 마주치던 때를 자꾸 떠올리게 되었다. 당시 통역자는 아무도 없었고 리아의 뇌전증은 폐렴으로 오진되었다. 만일 응급실의 전공의들이 ‘동물 병원 의사’가 되는 대신, 몽족이 믿거나 두려워하거나 바라는 걸 알려고 노력해 애초부터 리 부부의 신뢰를 얻어낼 수 있었다면(아니면 적어도 신뢰를 짓밟지 않았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p.427
리아가 생후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아파트 현관문이 쾅 닫히는 소리에 놀라 기절하는 일이 생겼다. 리 부부는 리아의 증상을 '코 다 페이'로 보았는데, 이는 '영혼에게 붙들리면 쓰러진다'는 뜻이다. 이 병은 몽족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이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양면적이다. 한쪽에서는 이 병을 심각하고 위험한 질환으로 받아들이고, 한편에서는 이를 영예로운 병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리아의 발작을 바라보는 리 부부의 태도엔 걱정과 자부심이 뒤섞여 있었다. 그 후 몇 달 동안 리아는 적어도 스무 번의 발작 증세를 보였고, 리 부부는 서구 의술의 효능을 의심했음에도 너무 걱정이 되어 리아를 병원으로 데려가야 했다. 의사 입장에선 리 부부가 딸의 증세를 '영혼에게 붙들려 쓰러진 병'으로 이미 진단했다는 사실을 알 방법이 없었고, 리 부부 입장에서는 의사가 리아를 뇌전증으로 진단했으며 그것이 가장 흔한 신경질환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 도리가 없었다. 비극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한 아이의 병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면서 치료는 두 문화 사이를 헤매게 된 것이다. 의사들은 처방된 약을 제대로 투약하지 않는 리아 가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리아의 가족들은 리아에게 나타나는 부작용을 보며 의사들과 약물을 불신한다. 앤 패디먼은 9년에 걸쳐 이 사건에 연루된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방대한 문헌 자료를 조사해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문제점을 정밀하게 파헤치고 있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치료하고자 하는 미국 의료진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밤낮없이 애쓰며 최선을 다했고, 리아의 부모 역시 가장 전통적인 몽족 치료법을 병용하길 원했던 것이 리아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기 때문이었으니, 양쪽 누구도 틀렸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좋은 의도와 노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화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리아를 중심으로 의사들과 가족들간의 대립과 전쟁으로 인해 살던 곳을 떠나야 했던 몽족의 역사가 교차로 진행되는 무겁고, 복잡한 이야기이지만 층층이 쌓인 문화 간 갈등을 이렇게 진지하면서, 생동감있게 그려내는 앤 패디먼의 글솜씨에 감탄하면서 읽었다. 더 나은 사회를 꿈꾸며, 다양한 문화의 소통을 위해 한번쯤 읽어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