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다른 세계에 산다 - 자폐인이 보는 세상은 어떻게 다른가?
조제프 쇼바네크 지음, 이정은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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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를 지닌 아동 대부분은 걸음걸이와 전반적인 행동 방식이 조금 이상하다. 내가 교실에서 선생님의 지시에 자기들과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금세 알아챘다. 아이들은 관찰력이 뛰어난 터라 그런 식으로 빠르게 학급 친구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집단 내에서 누가 인기가 많고 사랑받을지, 누가 외톨이가 될지도 빠삭하게 꿰고 있다. 어른들의 사회도 비슷한데, 단지 '세련된 위선'이 더할 뿐이다. 직접 때리는 대신 배제하는 어떤 말이나 태도를 활용해서 엇비슷한 결과가 생긴다.           p.40

 

이 책의 저자인 조제프 쇼바네크는 아스퍼거증후군으로 만 6세까지 말을 하지 못했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지적 능력이 없다는 판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바칼로레아를 통과하고, 독학으로 10개 언어를 배웠으며, 프랑스 명문대 시앙스 포 졸업 후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시련과 실패를 겪으면서 살고 있다. 간단한 시간 약속을 하거나, 친구 모임에 나가는 데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고, 사소한 결정을 내리는 데도 여전히 혼란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폐증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장애가 아니라 자신을 설명하는 하나의 특징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자폐를 지닌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과 그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둡거나, 무겁지 않을뿐더러 유머러스 하기까지 하다. 이는 그가 세상을 살아온 태도,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긍정적인지 보여준다. 우리가 쉽게 예상하는 자폐증과 아스퍼거증후군에 대한 상식이라는 것이 실재와는 얼마나 다른 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폐와 자폐인에 대해 거의 백지상태인 것이 맞다. 다만, 우리의 편견이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게 만들고, 추측하고, 단정짓게 만드는 것뿐이다. 나 역시 자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다만 자폐를 가지고 있다면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식으로 말을 할 지 매체에서 보아온 상황들로 그저 예상할 뿐이다. 그러니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내면세계를 상상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런 책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편견을 깨고, 우리가 모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말이다.

 

 

 

어느 날 강연을 마쳤는데, 한 부인이 무척 놀란 표정으로 내가 웃을 줄 몰라야 하는데 왜 농담을 하느냐고 물었다. 어떤 어머니는 농담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되는 주제가 있고, 자폐증을 이야기하며 웃는 것은 상황의 심각성을 잊게 만든다며 나를 비난하기도 했다.... 나는 사람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인간이 웃는 존재라고 믿는다. 내가 운 좋게 교류할 수 있었던 자폐를 지닌 일부 성인들로부터 배운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아마도 그들의 풍부한 유머일 것이다. 물론 그런 면모는 잘 들여다보고 발견해내야 한다. 그들의 유머는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p.296

 

이 책의 서문을 쓴 영화 제작자 소피 레빌은 저자를 처음 만나면서 선입견이 흔들렸다고 말하며 그의 외모를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 '팀버튼의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 기이한 외모의 꺽다리 사내'가 느릿느릿한 목소리에 억양은 이국적이었지만 정확한 단어를 사용했으며 재치가 돋보였다고 말이다. 그는 청중들이 간간이 웃음을 터뜨릴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며 강연을 하는 중이었다. 조제프 쇼바네크는 자신의 장애를 하소연하지 않고, 억울해 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결코 잊지 않으면서 성공의 수단으로 삼았다. 물론 수많은 자폐 아동들이 만 6세 전에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하고 평생 침묵이라는 감옥에 갇혀 지내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와 같은 사례가 앞으로 더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어눌해 보이는 말투와 여느 사람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기 때문에 자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쉽게 사회 속에서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폐인 스스로 자신이 세상의 어떤 틀에도 들어맞지 않음을 인지하고, 그 모습 그대로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세상 속에서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저자는 자신에게 있어서 자폐증은 자기 키가 195센티미터이고, 체코 출신 프랑스인이라는 것처럼 여러 특징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사람은 어떤 한 가지 설명에 가둘 수 없는 존재이고, 각각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고, 각자의 독특한 점 그대로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폐를 지녔든 아니든, 혹은 특정한 약점이 있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자신만의 모습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자폐증'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자폐증상을 겪고 있는 이의 내면 세계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인생을 긍정하는 그의 삶의 태도에 감탄했고, 우리 모두 각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자폐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흥미로운 관점을 통해서 인간은 하나의 설명으로 가둘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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