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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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순종적인 아내, 어머니, 집 안의 천사, 심지어 착한 독신 이모라는 인습적 역할의 감수를 요구받았지만, 이 요구가 더 많은 (방랑하고 배우고 쓰고 자유롭게 사랑하며 현재 상황에 도전하는) 자유를 향한 욕망과 나란히 함께하기는 어려웠다. 우리 모두가 그럴 수밖에 없듯이, 이 작가들은 자연의 시간이라는 신화에 갇힌 채 자아분열을 일으켜 때때로 광기를 경험하거나 미친 여자를 만들어냈다.         p.13

 

여성 작가의 좌표를 내리그은 최초의 이정표, 페미니즘 비평의 시대를 연 최초의 책, 문학 읽기의 새로운 길을 연 현대의 고전 <다락방의 미친 여자>가 미국 출간 43년 만에, 한국어판 출간 13년 만에 재출간되었다. 제인 오스틴에서 에밀리 디킨슨까지, 존 밀턴에서 월트 휘트먼까지 ‘다락방의 미친 여자’라는 키워드로 재구성한 영미 여성 문학사! 너무너무 기대된다! ‘다락방의 미친 독자’ 라는 귀여운 이름의 서포터즈로 한 달 동안 이 책을 만나 보게 되었다.

 

이 책의 출발점은 두 저자가 대학에서 함께 가르친 여성문학 수업이었다. 영문학과 교수로 그들은 제인 오스틴과 샬럿 브론테부터 에밀리 디킨슨, 버지니아 울프, 실비아 플라스에 이르는 여성들의 작품을 읽으며, 작품들이 지리적 역사적 심리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주제와 이미지가 일관적이라는 데 놀랐다고 한다. 실제로 극단적으로 다른 장르에 속하는 여성 문학을 연구할 때도 여성문학의 고유한 전통이라 할 법한 것을 발견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19세기 여성문학을 정밀하게 연구했다. 저자들은 왜 19세기를 파고들게 되었을까? 19세기는 제인 오스틴, 메리 셸리, 에밀리 브론테, 샬럿 브론테, 조지 엘리엇, 에밀리 디킨슨 등 거인 같은 작가들이 대거 등장한 시기였으며, 여성이 작가가 된다는 것이 변칙적이거나 이례적이지 않은 최초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1부에서는 글을 쓰고 읽고 생각하는 일이란 본래 남성의 활동이라고 생각해왔던 부권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아가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여성을 ‘천사’와 ‘괴물’이라는 극단적인 이미지 안에 가두게 되었는지, 그리하여 이러한 이미지가 여성의 현실적인 삶뿐만 아니라, 여성이 펜을 들게 된 것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2부에서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3부에서는 밀턴의 악령에서 시작해 메리 셸리,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은 당대에 통속 소설로 마크 트웨인을 비롯한 남성 작가들로부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D.H. 로런스는 오스틴에 대해 '매우 불쾌하고 형편없고 인색하고 속물적이라는 의미에서 영국적'이라고 말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제인 오스틴은 '자신이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에 대한 불편함, 특히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부여한 협소한 위치에 대한 불만, 성적 착취의 경제학'에 대해 끈질기게 보여주었다. 3부에 접어들면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여자를 기껏해야 남에게 봉사하는 이차적 존재, 아이를 낳거나 아담의 사려 깊은 안내에 따라 나뭇가지를 다듬는 참회하는 이브로 여겼던 밀턴의 악령이 여성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시대 평론가들은 <제인 에어>의 조악함이나 섹슈얼리티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기보다 (그들은 이 책에 나오는 이런 요소를 싫어했다) 사회조직과 관습, 그리고 사회규범을 거부하는 이 작품의 '반기독교성' (간단히 말해서 이 작품의 반항적인 페미니즘)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은 충분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평론가들은 로체스터의 거만한 바이런적인 성적 에너지 때문이 아니라 제인의 바이런적인 자존심과 열정 때문에,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 사이에 일어난 반사회적인 성적 동요 때문이 아니라 여자 주인공이 사회적 운명에 순종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p.600

 

4부에서는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해 샬럿 브론테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5부에서는 조지 엘리엇의 작품들을 분석해본다. 샬럿 브론테는 19세기 많은 여성들이 가부장적인 집과 '여성의' 역할에 갇힌 채 느끼는 감정에 대해, 그리고 그런 집과 역할에서 도망치고 싶은 자신들의 열렬한 욕망에 대해 강박적으로 글을 썼던 방식, 대개 (은유적으로) '무아지경' 상태라고 부를 수 있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작가였다. 샬럿 브론테의 소설은 여성문학에 나타난 폐쇄라는 문학적 형상과 분신 사용의 관련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19세기 중반의 여성 작가들은 천사 같은 순종과 괴물 같은 자기주장이라는 쌍둥이 같은 유혹에 붙잡혀 있는 가운데 남성 지배 문화에서 문제적인 여성의 역할을 특히 강조했는데, 가장 두드러진 작가 중에 영국의 조지 엘리엇이 있다. 조지 엘리엇의 작품은 <벗겨진 베일> 밖에 만나보지 못했는데, 다행히도 5부가 이 작품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해서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분량이 너무 압도적이라 <미들마치>를 아직 읽어 보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다시 한번 도전 욕구가 샘솟는 중이다.

 

 

6부에서는 에밀리 디킨슨의 삶과 작품을 중심으로 19세기 여성 시인의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의 동시대인이며 유사한 방식으로 우상 파괴적이었던 두 미국 시인, 남성 시인 윌트 휘트먼과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생애와 작품을 비교해보는 대목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리고 <제인 에어>의 샬럿 브론테, <폭풍의 언덩>의 에밀리 브론테, <미들마치>의 조지 엘리엇에 이르는 18세기말과 19세기의 거의 모든 여성 작가가 '미친 여자'라는 씁쓸한 자화상을 자기 소설의 다락방에 은닉시켰던 반면, 에밀리 디킨슨은 스스로 미친 여자가 되었다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디킨슨은 (의도적으로 미친 여자로 분함으로써) 아이러니하게 미친 여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아버지 집의 방에 갇힌 무력한 광장공포증 환자가 됨으로써) 정말로 미친 여자가 되었으니, 그녀의 삶 자체가 일종의 소설이고 이야기시였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것이다.

 

자, 이렇게 해서 천 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방대한 분량의 작품을 4주에 걸쳐서 조금씩 읽어 보았다. 정말 벽돌 두께의 페이지 때문에 이걸 언제 다 읽나 싶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매주 정해진 분량을 읽어 나갔던 탓에 완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혹시나 이 작품이 궁금하지만 엄청난 양의 두께로 인해 선뜻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면 망설임을 접어 두고 꼭 도전해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영미문학 담론에서 고전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동시에 감금, 폐쇄, 거식증, 가스라이팅 등 2022년 지금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꼭 읽어야만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9세기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면, 이 책을 통해서 그들의 '미친' 분신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에밀리 디킨슨은 '나는 아무도 아니다!'라는 말을 했었지만, 우리는 결코 아무도 아니지 않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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