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하이웨이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직 남은 볼일이 있다면, 그걸 끝내기로 하자.
우리는 그 같은 문장을 말하기 위해서라면 평생을 기다릴 수 있다. 그리고 막상 그런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담대함과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해 그런 말을 못 하기 십상이다. 그런 종류의 침착함은 교육이나 연습의 산물이 아니다. 그 자질을 타고났든가 아니든가, 둘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타고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 그런 자질의 최상의 모습이 나온다.        p.131

 

<우아한 연인>, <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의 신작을 가제본으로 만나보게 되었다. 에이미 토울스는 한 작품의 완성에 4년의 집필과 1년의 독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4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발표한 데뷔작 <우아한 연인>이 2011년 작이고, 두 번째 작품인 <모스크바의 신사>는 2016년 작이다. 이번에 나온 <링컨 하이웨이>는 2021년 작으로 기다림의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그 시간만큼을 고스란히 보상해 주는 작가이기에 너무도 기대가 되었다. <우아한 연인>이 세계 대공황의 그림자가 드리운 1938년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했다면, <모스크바의 신사>는 20세기 초 볼셰비키 혁명 이후 소비에트 러시아를 배경으로 했었다.

 

이번 신작은 1954년을 무대로 어머니를 찾기 위해 네브래스카에서 캘리포니아로 차를 몰고 가려는 형제의 이야기이다. 과실치사로 소년원에 수감 중이던 에밋 왓슨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조기 퇴소해 고향 집으로 막 돌아왔다.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남겨 준 것은 담보대출에 더해 새 대출로 인한 빚들뿐이었고, 농장은 압류당했고, 집도 곧 은행으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유일하게 에밋에게 남은 것은 자신의 명의로 등록된 차 한대뿐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죽게 한 소년의 피해자 가족들이 언제 그에게 분노를 쏟아낼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만 했다. 열여덟 에밋의 유일한 가족은 여덟 살의 조숙한 동생 빌리 밖에 없었다. 에밋은 빌리를 데리고 남부 텍사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베개에 몸을 받친 채 울리는 여분의 약병 속 약을 재빨리 털어 넣고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는 동안 그의 생각은 비오는 날 완성하곤 했던 조각 그림 맞추기로 돌아갔다.
모든 사람의 삶이 조각 그림 맞추기의 조각 같다면 멋지지 않을까, 울리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의 삶도 다른 사람의 삶에 불편을 초래하는 것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의 삶도 특별히 설계된 자신의 자리에 딱 들어맞을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복잡한 전체 그림이 완성될 수 있게 할 것이다.         p.707

 

빌리는 8년 전에 아이들을 남기고 집을 나갔던 어머니가 보낸 그림엽서를 통해 캘리포니아로 가면 어머니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빌리의 주장에 에밋은 고민하다 결국 대륙 서쪽 끝으로 향하기로 결정하는데, 그들 형제 앞에 예상치도 못했던 방문객이 나타난다. 에밋을 집까지 태워다 주었던 원장의 자동차 트렁크에 소년원에서 만난 친구 더치스와 울리가 숨어들어 있었던 것이다. 형기를 아직 네다섯 달 정도 남겨두었기에 둘 다 사실상 탈옥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무단이탈 이유가 있었고, 에밋은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여정 중간에 친구들을 태워주기로 한다. 하지만 여정은 처음의 계획대로 되지 않고, 경로를 이탈한다. 이들 네 소년은 각자가 도달하기를 원하는 그곳에 갈 수 있을까.

 

이 책의 제목이자 네 소년의 여정을 통과하는 것은 미국을 횡단하는 최초의 고속도로인 '링컨 하이웨이'이다. 뉴욕시의 타임스퀘어에서 시작해서 3390마일 떨어진 샌프란시스코의 링컨 공원에서 끝나는, 미국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관통하는 도로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 도로를 통과하는 오갈랄라, 샤이엔, 롤린스, 록스프링스, 솔트레이크시티, 일리, 리노, 새크라멘토가 형제의 엄마가 보낸 그림 엽서의 지점들이기도 하다. 물론 샌프란시스코로 간다고 해서 엄마를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은 8년 동안 어머니로부터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고, 어머니가 어디 계신지도 전혀 몰랐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 작품의 방점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소년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 그들이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겪게 되는 경험들에 있다. 그들이 거쳐가는 모든 순간, 모든 우여곡절, 그리고 매일매일이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다.

 

무려 팔백 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분량 동안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멈출 새가 없었다. 이 긴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계속 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말이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하루에 한 장, 열흘 동안 있었던 일을 그리고 있다. 날짜의 역순으로 장 번호를 매겨, 10, 9, 8로 카운트다운처럼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네 소년을 비롯해 그들의 주변 인물들 각각의 다중적인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여정은 에이모 토울스의 전작들과는 여러 모로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매번 작품을 쓸 때마다 나름의 의도를 가지고 시간적, 공간적으로 판이하게 다른 이야기를 쓰려고 하기에, 그의 작품은 늘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는 현재 새로운 소설을 집필 중이며 그 이야기는 1940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시작해 1999년 뉴욕시에서 끝난다고 한다. 또 4년여의 시간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겠지만, 여전히 그 작품이 기다림을 보상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