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말이 될 때 - 우리의 세계를 넓히는 질병의 언어들 맞불
안희제.이다울 지음 / 동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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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제 님이 상상하는 미래라면 왠지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저는 여전히 신을 저주하거나 세상을 저주하거나 저 자신을 저주하지만, 희제님의 결심을 떠올릴 때면 잠시라도 할머니가 될 미래를 상상하고 싶어집니다. 희제 님은 복권에 당첨된다면 어떤 일을 벌이며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물론 여전히 아픈 몸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에요. 희제 님이 꿈꾸는 구체적인 삶의 모양이 궁금합니다.       - 이다울, '복권에 당첨된다면' 중에서, p.26~27

 

동녘의 ‘맞불’ 시리즈 그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작품인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가 노지양, 홍한별 두 번역가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면, 두 번째 작품인 <몸이 말이 될 때>는 90년대생 만성질환자들의 호쾌한 대화를 통해 질병과 장애, 몸을 대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두 저자는 <난치의 상상력>의 안희제와 <천장의 무늬>를 쓴 이다울이다. 두 저자는 90년대생이고, 질병과 사회에 관해 꾸준히 글을 써왔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프로젝트로 처음 만나게 된 사이이기도 하다.

 

심리적인 문제, 내부장애, 만성 통증 등의 보이지 않는 장애는 지속적으로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사자가 경험하는 고통에 대해 주변인들이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들은 둘 다 드물고, 치료 안 되고, 면역 체계에 문제가 있는 질병을 겪지만 단순히 '아픈 사람'이라는 공통점만으로 한데 묶을 수 없는, 질병의 경험과 성별 등의 변수에 의한 서로의 무수한 차이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나와 당신이 다르다는 사실에 차근차근, 멈칫하며 다가가는 과정'은 쉽지 않아서 더 흥미로웠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하고, 그 사람과 나를 둘러싼 사회를 이해하는 것은 자주 의료적으로 진짜나 가짜라고 진단되는 것과는 큰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루쉰의 소설도, 고골의 소설도 읽어본 적이 없지만, "그들의 내밀하고 세밀한 일기 그 자체가 너무나 진지하고 단호"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망상이며 광기인지" 헷갈린다는 말씀이 이런 맥락에서 소중했습니다. 다울 님이 샤워기 아래에서 겪는 죄책감과 욕망에 대해 그것이 망상인지 아니면 적절한지 헷갈린다는 말씀도요.            - 안희제, '그들에게 한 방을 날릴 수 있을 겁니다' 중에서, p.120

 

통증과 피로를 지속적으로 겪으면서 사는 삶은 어떤 것일까 나는 알지 못한다. 증세가 악화되었다가 호전되기를 반복하고, 호전되더라도 이유가 명확하지 않으며, 애초에 통증이 시작된 계기가 원인이 없다는 것, 그것만큼 억울한 것이 또 있을까. 게다가 두 저자는 20대, 대학생이다. 인생에서 가장 에너지 넘치는 시기, 가장 반짝거리는 햇살 같아야 할 시기 아닌가. 특히나 이들의 고민은 어디를 가든 몸 상태를 설명해야만 하는데, 그것을 제대로 설명할 언어가 없고, 성가시다는 것이다. 매일 몸살이 난 것처럼 10분도 채 서 있지 못하는데,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니 얼마나 무섭고, 절망적일까. 하지만 이들 두 저자는 아픔으로 인한 불편과 불쾌들을 매개로 질병 서사를 써 나간다. 서로에게 자신의 몸을 설명함으로써, 상대의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통을 ‘2인칭’으로 말하고 쓰는 법, 당장 고통을 말하고 듣는 일이 수월해질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을 통해 질병과 장애, 몸을 대하는 우리의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진다면 좋을 것 같다. 동녘의 ‘맞불’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에코페미니즘과 동물권을 종횡무진 사유하는 이라영X전범선의 <인간동물의 저녁 식사에 초대합니다>, 수면 아래 잠긴 여성의 우울과 자살을 건져 올리는 서울대 의료인류학과 이현정X《미쳐 있고 괴상하며 우울하고 똑똑한 여자들》을 쓴 하미나의 <여자들의 손을 맞잡고 걷기>가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매우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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