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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파수꾼 ㅣ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평점 :
"당신도 알겠지만, 난 돌이킬 수 없어요. 나는 절대로 돌이킬 수 없을 거라고요."
"사람은 뭐든 돌이킬 수 있는 법이지."
"아뇨. 당신과 나 사이에는 인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뭔가가 있어요. 당신도 그걸 느낄 거예요. 당신은..... 그걸 알아야 해요. 그걸 알지 않으면 안 돼요." p.35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는 마흔다섯의 도로시 시모어는 할리우드를 창피스럽게 한 문제 인물에 속했다. 스물다섯에 여배우로서 성공을 거머쥐었으나, 결국 번 돈을 탕진하고 몇몇 소송 건에 휘말린 빈털터리의 이름 없는 여자가 되어 다시 할리우드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했던 그녀가 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져 꽤 큰 명성을 안겨주었고, 지금은 시나리오를 쓰는 걸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어느 날 연인이자 영화사 대표인 폴과 함께 탄 차에 한 젊은 남자가 미치광이처럼 뛰어 들었고, 도로시는 그 청년을 집에 데려와 기운을 차릴 때까지 머물게 한다.
당시 청년은 약에 잔뜩 취한 상태였기에, 폴은 웬 바보 같은 부랑자 녀석을 도로시가 집에 데려온 것이 못마땅하다. 도로시는 그저 자비심에서 우러나온 임시적인 조치로 청년을 데려온 거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도로시와 젊은 청년 루이스는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되지만, 그녀는 그 어떤 의미로도 그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녀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는데, 순수한 그 마음이 점점 광기로 치닫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도로시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둘 죽기 시작하고, 그 동기가 모두 도로시를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것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루이스는 그들을 살해하고 자살이나 사고로 위장했다. 영화배우로 성공해 부자가 되지만, 결혼한 폴과 도로시에게 같이 살 것을 권하며 가까운 극단의 애정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말이에요, 우리는 셋이서 여기 있어요. 날씨는 감미롭고, 지구는 둥글죠.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해요…. 그런데 우리의 관계들은 왜 굶주리고 쫓기는 형국을 하고 있는 거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풀이 투덜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건 연민 때문이오, 도로시. 나는 그것에 대해 잘 모르지만, 신문들을 읽어봐요. 그 주제에 대한 조사로 넘쳐나고 있으니까." p.99
루이스의 살인 행각들이 완전범죄로 결말이 나는 것도 그렇고, 폴과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루이스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막겠다며 곁에 두고 챙기겠다는 도로시의 마음도 다소 파격적인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사강은 자칫 치정극으로 흐를 수도 있는 이야기를 전혀 무겁지 않게, 담백함을 넘어 경쾌하게 그리고 있다.
사강의 작품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스피드, 알코올, 마약, 도박, 사랑…… 이 모든 것에 중독된 사강은 속칭 ‘스캔들 메이커’였으니 말이다. 저 유명한 발언 역시 마약 혐의로 법정에 선 그녀가 했던 자기 변론이다. 자기 자신을 이토록 파괴시킬 수 있을까 싶은 그녀는 사실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해주길, 제대로 봐주길 바랬던 것이 아닐까.
<마음의 파수꾼>은 나이 든 여자, 위스키, 카레이싱, 완전범죄 등 사람들이 그녀에게 비난하는 요소들만 골라 썼다고 스스로 밝힌 작품이다. 당시 사강의 나이 서른셋이었고, 이 작품은 단 15일 만에 쓰였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병적일 정도로 극단적인 사랑과 완전범죄로 끝나는 결말에 당시 사람들의 심기가 불편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혹적인 악마'라고 불린 작가였던 만큼, 사강은 너무도 아름다웠고, 눈부시게 자유분방한 여성이기도 했으니 이 작품은 그녀와 아주 많이 닮아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