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푸른 상흔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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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매력적인 직업에서 곤란한 건 사명, 욕구, 정신적 자살, 보상 그리고 나처럼 십팔 년 정도 되면 글자 그대로 상상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평가를 당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명랑한 부인들이나 탱탱한 젊은이들에게 <슬픔이여 안녕>, 희곡 <스웨덴의 성>을 무척 좋아한다는 말을 늘 듣는다.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그런 말은 작가에게는 조금 우울하게 들린다.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서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는 두 자녀와 별로 인기 없이 쩔뚝거리는 불쌍한 오리 새끼들을 줄줄이 데리고 있는 기분이 든달까?        p.76

 

이 작품의 주인공 세바스티앵과 엘레오노르는 사강이 1960년 발표한 자신의 첫 번째 희곡 <스웨덴의 성>에 나왔던 인물들이다. 사강은 문득 '십 년 전 인물들을 다시 불러내는 것도 재미있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빈털터리이지만 유쾌하고, 시니컬하지만 점잖은 극 중 인물들을 데려온다. 사강이 서른 일곱의 나이에 쓴 <마음의 푸른 상흔>은 소설과 에세이가 교차 진행되는 독특한 구조의 작품이다.

 

스웨덴 출신의 세바스티앵과 엘레오노르 남매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무일푼으로 프랑스에 온 그들이 파리에서 가난하고 불안한 상황에서 나름의 고군분투를 하는 스토리와 그 이야기를 집필하는 작가의 시점이 함께 보여지는 것이다. 소설의 첫 부분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해 인물에 대한 생각과 집필 과정,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고뇌와 독자에 대한 생각 등을 고스란히 쓰고 있어 자전적 에세이의 성격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구의 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스토리라인이 한 축에서 계속 진행되며 그들만의 서사를 구축해나간다.

 

 

 

내가 누보로망 작가들을 탓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들은 발사되지 않는 총알, 핀 없는 수류탄을 가지고 논다. 불분명한 단어들 사이에서 그려지지 않은 인물을 독자에게 스스로 만들어내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보란 듯이 손을 씻는다. 생략이 매력적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나는 생략을 그 정도로 많이 사용해서 어떤 즐거움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여주인공을 위해 커피 잔에 눈물까지 흘렸던 발자크 만세! 편집증적으로 그 어떤 비약도 용납하지 않는 프루스트 만세!            p.136

 

소설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구성은 아주 특별한 재미를 선사하는데, 사강이 자신이 쓴 소설을 독자가 읽고 있는 중간중간 해설을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세바스티앵은 휘파람을 불며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조금 숨이 찼다.' 라는 문장을 쓰고 싶다는 멘트가 나오면, 바로 다음 장에 그 문장으로 시작되는 소설이 나오는 식이다. 소설을 집필하지 못한 지 몇 달이 되면, '내가 없는 동안 나의 소중한 반 밀렘 남매는 어떻게 밥을 먹고 무엇으로 생활했을까?' 라며 이후에 이어질 소설의 줄거리들을 이리 저리 이야기 하고, 그러다 또 소설 속 상황들이 펼쳐진다. 그야말로 쓰여질 소설들을 작가가 직접 독자들에게 중계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의 안과 밖을 모두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게다가 스스로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나도 안다. 내가 다시 하찮은 주제에 빠졌다는 것을' 이라는 식으로. 그리고 페미니즘을 비롯해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견해도 있고, 자신의 작품을 읽고 평가하는 독자에 대한 진심도 보여준다. 소설 속 이야기와 에세이의 어조가 다르다는 점도 흥미롭고, 작가와 소설 속 주인공들이 한집에 모이는 순간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사강의 작품들을 좋아한다면, 아주 특별하고 독창적인 형식의 이 작품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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