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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심장 ㅣ 스토리콜렉터 100
크리스 카터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22년 3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328/pimg_7694311453359087.jpeg)
루시엔은 '한 번에 맞혔어, 로버트'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 이론들을 시험해보고 싶었어." 그는 몸을 약간 앞으로 숙였다. "로버트, 넌 흥미를 느끼지 않아? 그렇게 열성적이었던 학생이, 살인자의 머릿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싶지 않았다고?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진짜 이유가 궁금하지 않았던 거야? 우리가 배웠던 이론들이 진실인지, 아니면 멍청한 심리학자들의 허튼 추측에 불과할 뿐인지 정말로 알고 싶지 않았어?" p.228
와이오밍주의 남동부 휘틀랜드 외곽에 있는 휴게소 식당은 달콤한 파이로 유명했다. 폭풍우가 심했던 여름이었고, 막 아침 6시가 지난 시간이라 가게는 평소보다 덜 붐볐다. 사람들은 커피와 도넛, 갓 구운 파이 등으로 아침을 먹는 중이었는데, 갑작스레 커다란 유리창 밖에서 픽업 트럭 한대가 가게를 향해 곧장 달려오다 단 몇 미터 앞에서 방향을 틀어 건물을 비껴갔다. 그러고는 주차돼 있던 차를 치고 옆 건물을 들이받으며 겨우 멈춰선다. 마침 식당에는 보안관과 보안관보가 있었기에, 서둘러 사고를 수습하러 달려 나왔는데 심장마비를 일으킨 운전자 외에 다친 사람은 없었다. 문제는 트럭과 충돌해 주차되어 있던 차의 트렁크가 열렸는데, 그 속에 있던 아이스박스가 쓰러지면서 속에 있던 여성의 절단된 머리가 발견된 것이다.
해당 차의 주인은 용의자로 즉시 체포되어 FBI에 구금되었지만, 끈질기게 묵비권을 행사하다 마침내 입을 연다. "로버트 헌터, 난 그 사람한테만 말할 겁니다'라고. FBI는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의 강력계 형사인 로버트 헌터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그는 용의자가 구류되어 있는 콴티코의 FBI 아카데미로 향한다. 용의자인 루시엔 폴터는 사실 로버트 헌터의 대학교 시절 친구이자 범죄심리학도로서 라이벌이었다. 루시엔은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며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점점 사이코패스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며 옛친구와 FBI 모두를 경악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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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 미친 생각은 실제가 됐어, 로버트. 그리고 그 책 속 정보는 FBI, 국립 강력범죄분석센터, 그리고 BAU, 아니 전 세계 사법기관들의 잔혹한 연쇄살인 범죄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을 거야. 이제껏 아무도 하지 않았던 것들, 내가 하지 않았다면 이 세계는 절대 모를 부분까지 이해하게 해줄 테지. 한 번도 설명되지 않은 은밀한 행위와 생각들 말이야. 그런 범죄자들을 잡을 확률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일 수 있어. 그건 너와 이 엉망진창인 세상에 내가 주는 선물이야. 내 연구와 그 책들은 앞으로 대대로 분석되고 참고될 거야.”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 연구 명목으로 목숨 몇 개 앗아 간들 무슨 상관이야? 지식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야, 로버트. 그리고 어떤 것들은 다른 것들보다 훨씬 비싸.” p.501
로버트 헌터는 연쇄살인을 추적하는 연방 특수요원이 아니라 로스앤젤레스 경찰의 일개 형사이다. 하지만 FBI 국장까지 헌터가 오래 전에 썼던 <범죄행위에 관한 고급 심리 연구>라는 박사 논문을 읽었고, 그가 최고의 프로파일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여러 차례 자신의 팀원으로 뽑으려고 시도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헌터는 연방요원직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특수강력범죄수사대의 팀장으로서 자기 분야에서 최고였다. 루시엔은 그런 헌터가 자신이 만나본 가장 똑똑한 사람 중 하나였다고 말하는 옛 친구이다. 기숙사의 룸메이트로서 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 그들은 졸업 이후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때 범죄심리학을 함께 공부했던 두 친구가 강력계 형사와 연쇄살인마가 되어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두뇌 싸움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 이 작품은 사이코패스의 정신세계를 굉장히 밀도 있게 보여준다.
루시엔은 자신이 데려왔던 사람들과 장소들, 사용했던 범행 수법들을 전부 기록해 두었고, 피해자들의 신체 일부나 피부를 기념품으로 보관하고 있었으며, 체포된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통제하고 FBI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게임을 시작한다. 사이코패스가 무엇 때문에 감정이나 가책 없이 살인하게 되는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그의 범행은 오랜 시간에 걸친 학습과 실험으로 이루어졌다. 덕분에 우리는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결코 알고 싶지 않았던 사이코패스의 내면을 만나게 된다. 이 작품은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 크리스 카터의 대표작이다. 작가가 실제 미시간주 검찰청의 형사심리팀에 근무하며 종신형을 선고받은 중범죄자들을 인터뷰하고, 연구했던 이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인텔리 사이코패스 캐릭터는 <양들의 침묵> 속 살인마 '한니발 렉터'에 버금가는 오싹함을 안겨준다. 크리스 카터는 범죄심리학자 출신의 형사 '로버트 헌터' 시리즈로 '제프리 디버와 어깨를 견줄 만하다'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의 다음 작품도 기대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