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우주 - 우리가 잃어버린 세상의 모든 창조 신화 22
앤서니 애브니 지음, 이초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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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과학은 약 1430억 년 전 거대한 폭발에서 기원이 시작됐고 모든 사건과 사물이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보통 모든 기원에는 목적이 함축돼 있지만, 태초의 격동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이와 관련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스티븐 와인버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우주를 좀 더 이해하면 할수록, 우주는 그만큼 또한 무의미해 보이기도 한다. 우리 연구의 결실은 사람들을 위로해주지 않는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이야기들은 그런 불가해성과 절망을 뚫고 서사의 경로를 고안한 인간들의 창조적 대담함을 기린다.       p.40~41

 

이 책은 공간과 시간과 문화를 가로지르고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여정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찾은 방법들, 다양한 문화권에서 간직해온 수많은 창조 신화들을 통해 신화와 과학이 만나는 지점에 대해 사유한다. 산, 물길, 동굴, 섬, 극지방이라는 5가지 큰 지형으로 구분해, 남유럽, 동아시아, 북아메리카, 오세아니아, 폴리네시아, 북유럽 등등 세계 구석구석의 창조 신화 22가지를 여러 도판 자료와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 세상의 처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적 상상력은 대부분 유럽 문화권의 신화나 히브리 문화권의 성서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시작되는 성경 속 이야기나, 폭력과 불륜이 난무하는 신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그리스 신화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들은 단순히 지나간 옛이야기이거나 허황된 상상력에 그치더라도, 여전히 오늘날 각종 슈퍼히어로 영화나 게임, 판타지 문학 등을 통해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얼마나 독창적이고 진보적인 이야기인가! 이 창조 서사는 실제 시공간처럼 보이는 곳에서 전개되고, 모든 것이 멈추지 않고 천천히 조금씩 변한다. 초자연적인 존재나 초월적 개체가 언급되지도 않고 신을 이야기하거나 악마와 대화하지도 않는다. 이 창조 신화에는 '누가 왜 이렇게 했는지'가 없다.... 이는 이성적 절차에 따라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우주에 근거하여 우리를 단계적으로 안내하는 과학의 언어고 주의 깊은 관찰에 기초한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관련된 사건들의 자세한 순서를 기록하고 어떤 일의 씨앗에서 다음 일의 결과를 밝히는 일, 즉 과학자들이 '원인과 결과'라고 부르는,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여기에 있다.          p.251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 못지않은 명성을 자랑하는 ㄱ리스 시인 헤시오도스가 신들의 족보를 적어 놓은 <신들의 계보>에는 가정불화와 자극적인 사건들로 가득하다. 미국 애리조나주와 유타주의 접경지의 붉은 모래사막에 사는 나바호족의 서사는 층층이 쌓인 우주에 뚫린 구멍을 통해 사람들이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반복적으로 탈출하는 모험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에서 유래된 이야기에는 우아카라고 불리는 초능력을 지닌 신성한 존재들이 등장한다. 호주의 신화 지도들은 모든 주요 인물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풍경과 연결된다. 호데노쇼니족은 세계가 섬에서 자라났다고 생각했으며, 아프리카 만데 신화에서는 조그마한 왕바랭이 씨앗에서 최초의 인간이 등장한다. 그 밖에도 세계 지도의 방대한 지역을 훑으며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창세기보다 화려하고, 그리스 신화보다 대담하다.'

 

 

창조이야기는 흔히 신화라고 불리는데, 보통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고, 날조된 진실 혹은 비현실적 상상의 산물로 해석되어 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 들려주는 창조이야기는 순전히 '지어낸 이야기'인 것은 아니라고 하니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풍경에서 무엇을 경험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풍경이란 땅과 하늘과 사람의 혼합물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왔을까? 어떻게 시작했을까? 우리는 어떻게 전체와 조화롭게 어울리는가? 태초의 순간은 어떻게 '서사'로 만들어지게 되었는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특히 각각의 신화가 속한 지리적 위치나 문화적 특징에 따라 어떤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읽는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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