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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법 1~2 세트 - 전2권
야마다 무네키 지음, 최고은 옮김 / 애플북스 / 2022년 2월
평점 :
20대에 HAVI를 받는 게 상식인 현대,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젊었다. 그래도 실제 나이는 대충 짐작이 갔다. 눈의 총기, 다양한 표정, 쾌활함, 온몸에서 풍기는 분위기. 진짜 20대와, HAVI 덕에 스무 살의 육체를 유지하는 100세는 그런 것들이 다르다. 란코 역시 실제 나이는 98세다. 몸은 HAVI를 받은 스무 살 때와 똑같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 1권, p.32
서기 2048년, 불로화 기술인 ‘HAVI’가 도입된지 백년이 지난 시점에 이야기는 시작한다. 일본 정부는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린 백년법을 시행하기 위해 국민들을 설득하려고 홍보 전략을 세우는 중이다. 백년법이란, 불로화 시술을 받은 사람은 100년 후 죽어야 한다는 법률인 생존제한법이다. 불로화 기술로 이미 백년을 살았다 하더라도 강요된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시술을 받은지 100년이 거의 다 되어 백년법이 실행되면 가장 먼저 적용대상이 되는 이들을 중심으로 국민들 사이에서는 불안과 혼란, 반발이 일고 있었다. 하지만 생존제한법이 없다면 옛날 사람들이 사회에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육체는 늙지 않아도 정신은 늙게 마련이고, 더는 새로운 시대와 혁신이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HAVI 시행 이후 신생아 수는 해마다 감소하고 있었으며, 국민들이 영원한 젊음을 얻는 대신 나라 전체가 늙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20대에 시술을 받는 게 상식이 되어 버린 시절이라,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젊었지만, 진짜 20대와 HAVI를 받아 몸만 스무 살 때와 똑같게 유지하는 이들이 같을 수는 없었다. 거리에서는 노인들의 모습이 사라져 '노쇠'란 과거의 개념이 되어가고 있었고, 자식이 늙은 부모를 부양하는 전통도 그 의미를 잃어 버려 친자관계를 존속시킬 실질적인 이유도 사라졌다. '가족'이라는 개념이 사라졌고,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은 육체로 사는 남녀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것도 당연해진 사회였다. 인류에게 궁극의 꿈인 '불로불사의 삶'이 실현된 사회였지만, 누군가는 죽어야만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 현실의 비극이기도 했다. 과연 사람들은 불로화 시술을 받고 100년 후 죽어야 한다는 법률을 받아들일 것인가. 정부는 국민투표를 통해 백년법 시행을 결정하겠다고 발표한다. 과연 생존제한법은 시행될 수 있을까?
도쿄에 내리면 항상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도시는 이상한 열매 같다. 농익은 과육이 짓물러 녹아내리며 희미하게 썩은 내를 풍기기 시작했는데도 결코 떨어지지는 않는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될 리 없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머지않은 날에 뭔일인가 일어날 것이다. 일어나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언제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그 순간을 기다리며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 2권, p.142
'무병장수'는 인류의 오랜 숙원이었지만, 사실 그것은 결코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우리의 욕망이었다. 그런데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영생에의 꿈이 실제로 시행되고 있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니 누구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의문이 든다. 과연 늙지도 죽지도 않는 삶이란 과연 행복한 것일까. 게다가 백년법으로 정해진 생존가능기한이 되면 터미널 센터에 출두해 안락사 처치를 받아야 한다. 자신의 생명이 연장된 만큼 죽어야 하는 날짜가 정해져 생명의 유통기간이 생기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며 사는 것과 죽을 날이 정해진 채로 살아가는 것은 분명 다른 의미다. 극중에는 자기 수명의 기한을 정하는 게 싫다는 이유로 HAVI를 거부하고, 평범하게 늙어 주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반면 1000년이면 까마득한 훗날의 일이니,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한 채로 살 수 있다는 이유로 HAVI를 받는 사람들도 있었고 말이다.
이야기는 백년법 시행을 미루려는 정치 지도자층과 HAVI로 인한 사회의 재앙을 막기 위해 백년법을 시행해야 한다는 두 세력의 갈등과 '영원한 젊음'을 얻고 일상을 살아가는 국민들 각각의 시점에서 교차로 진행된다. 미래세대를 위해 죽음을 택할 것인가, 인간의 기본 권리인 생존권을 지킬 것인가,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자연스레 고민하며 읽게 되었다. 이 작품은 야마다 무네키의 제66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대상, 제10회 일본서점대상 수상작으로 국내에는 2016년에 출간되었다. 이번에 근사한 표지로 옷을 갈아 입고 새롭게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인간의 불로화 기술이 보급된 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SF이지만,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짚어 내는 현실적인 이야기이기도 했다. 인생의 유통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혹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여러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는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