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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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았던 날들' 리뷰 대회

 

문득 이전에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처음 죽은 사람을 가까이에서 봤을 때였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사람의 몸이란 무섭다거나 슬프다거나 그런 일상적인 감각에서 아주 많이 동떨어져 있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라는 막연한 느낌이 내 눈앞에 현실로 구체화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이를 먹을 수록 부고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져 회사 동료, 가족, 친구 할 것 없이 장례식장에 방문할 일이 잦아진다고 하던데, 이상하게도 나는 죽음에서 꽤 멀리 떨어진 삶을 살아 왔다. 내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것도 삼십 대 중반이 훌쩍 넘어섰을 즈음이었으니 말이다. 그전까지 나에게 죽음이란 피상적인 것, 실체가 없는 무엇이었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접하던 것, 혹은 나랑 전혀 상관없는 먼 타인들의 이야기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죽음에 가까이 있었던 그 날 이후로, 죽음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졌다.

 

 

삶을 결코 그 삶의 끝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살면서 '끝없이' 계속되리라 여겨지던 모든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을 말하기 전에, 존재했고, 존재할 수 있었을 모든 것을 말할 줄 아는 것.          p.56

 

우리는 소중한 걸 잃어버리고 나서야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배우곤 한다. 지나간 시간은 결코 다시 오지 않으며, 지금 놓쳐버린 이 순간이 나중에 생각하면 가슴 시리도록 아픈 후회가 된다는 것을 알아 차리지 못한다. 그리고 뒤늦게 죽음과 마주하게 되고서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유대인들은 고인을 떠나 보낼 때 그가 입은 수의의 가장자리를 꿰맨다고 한다. 남겨진 이들이 죽은 이를 위해 거행하는 마지막 의식인 셈이다. 지금 여기에 없는 자들을 기억하고, 떠난 이들의 흩어진 삶을 그러모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애도의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이제는 가끔 생각한다. 죽은 사람을 가까이서 보고, 장례를 치르고, 떠나 보내고, 그 죽음 뒤에 남겨진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말이다. 육체의 죽음은 그저 삶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죽음 뒤에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는지 말이다. 이 책의 저자인 델핀 오르빌뢰르는 프랑스의 세 번째 여자 랍비이다. 60만 명의 유대인들이 살아가는 프랑스 유대 공동체에서 여자 랍비는 단 다섯 명 뿐이라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죽음이 다가온 사람들을 곁에서 함께 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죽음에 관한 열한 가지 이야기는 현실에서 공존할 수 없는 죽음과 삶을 넘나 들며 상실의 기억들을 위로해 준다. 죽음을 배운다는 것이 가능할까? 이 책은 그 의문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해준다.

 

 

아무도 죽음에 대해 말할 줄 모른다. 아마도 그것이 죽음에 대해서 내릴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정의일 것이다. 죽음은 말을 벗어나는데, 죽음이 정확히 발화의 끝에 도장을 찍기 때문이다. 그것은 떠난 자의 발화의 끝일 뿐 아니라, 그의 뒤에 살아남아 충격 속에서 늘 언어를 오용할 수밖에 없는 자들의 발화의 끝이기도 하다. 애도 속에서 말은 의미작용을 멈추기 때문이다.             p.139

 

산다는 것은 다시 말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고, 나이를 먹은 만큼 노화한 육체는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죽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인간이 죽으면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죽음은 언제 시작되고, 어떤 경과로 진행되는지, 죽음 뒤에 남겨지는 것들에 대해서, 죽음 이후에 계속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오랜 동안 죽음을 다루며 남겨진 이들의 애도를 지켜보고 함께 해 온 저자는 랍비로서 자신의 역할을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이야기꾼으로 정의한다. 팬데믹으로 인해 죽음이 우리 삶의 터전에 허락도 없이 들어 왔고,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그 순간에 할 말과 행동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이 생명과 죽음이라는 경계를 넘어 서는 순간, 죽은 자에게서 살아 있는 자에게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 것이다. 홀로코스트와 테러, 지금 이 순간에서도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으로 인한 죽음들과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죽음들, 그 모든 죽음이 불러오는 두려움과 고통을 마주할 수 있도록,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생의 의지를 더 불태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또한 바로 그러한 이야기의 힘이다. '우리의 장례식에서 우리가 우리의 죽음으로 요약되지 않고, 그래서 우리가 살아생전에 얼마나 살아 있었는지를 느낄 수(p.57)' 있기를. 그러한 마음으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천천히 넘겨 읽게 되는 책이었다. 죽음이 도래하는 방식은 무한하고, 우리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살아 있는 이 순간에 더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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