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
토스카 리 지음, 조영학 옮김 / 허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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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항변하고 싶었으나 파수꾼들이 벌써 나를 지옥의 경계를 향해 끌고 가기 시작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트롤리는 보이지 않았다. 난 고개를 떨어트렸다. 한 발짝, 영원의 거리는 고작 한 걸음에 불과했다.
지옥에 떨어진 것을 환영하노라.        p.22

 

윈터는 엄마와 언니 재클린과 함께 신천국이라는 종교 집단에 들어간다. 그녀의 나이 일곱 살, 재클린은 열두 살 때였다. 아버지로부터 안전한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은 교주 매그너스가 지배하는 또 다른 지옥이었다. 이상한 제약이 많았고, 매그너스에게 복종해야 했으며, 모든 물건은 공유품이었고, 딸들과 엄마는 각자의 숙소에 배정되어 만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들은 신천국이 바로 천국이라는 말로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이 병들고 타락한 세상은 곧 끝나고, 그 후엔 선택 받은 소수만이 새 세상에서 사는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윈터가 사이비 종교단체에서 어른이 되어 가는 동안 바깥 세상에서는 원인불명의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었다.

 

알래스카 대륙의 한 농장에서 돼지들이 난도질 당한 채 죽어 있는 것이 발견된다. 그리고 몇 개월 뒤 포틀랜드의 오리건에서는 뇌염의 창궐로 의사들이 골치 아파하고 있는 중이다. 초기 치매 증세를 보이는데 뇌부종은 없는 환자가 벌써 일곱 명이었기 때문이다. 이 조기치매 환자는 해당 지역을 휩쓸며 급증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했다. 변종 인플루엔자를 통해 전파되는 이 질병이 폭발적으로 급증하면서 도로가 봉쇄되고, 가게들은 문을 걸어 잠갔고, 휴교령이 떨어진다. 보건국에서는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집이 안전하다는 경고 메세지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세상의 종말이 찾아 오는 걸까.

 

 

 

그간 온갖 종류의 두려움을 보았다. 잘못할까 봐 두렵고 잘할까 봐 두렵고 몰라서 두렵다. 미래가 두렵고 신도 두렵다. 나 자신마저 두렵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영혼이 영원히 지옥불에서 타는 건 아닐까? 두려움은 엔클라베와 매그너스의 설교 하나하나에 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또 다른 두려움이 생기고 말았다. 우리가 믿고 삶을 의지했던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       p.216

 

통념에 따르면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넘지 못할 경계, 즉 무한 차원의 영원과 공간이 있다고 하지만, 윈터에게 그 경계선은 단 한 걸음에 불과했다. 이야기는 우여곡절 끝에 종교집단에서 '파문 당하는' 형태로 탈출에 성공한 윈터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무사히 지옥의 경계를 벗어났지만, 폭력과 오염으로 가득한 바깥 세상이 천국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게다가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잠식하고 있었으니, 그녀는 또 다른 지옥에 도착한 것일까. 아직 '신천국'에는 윈터의 언니 재클린과 조카 트룰리가 있었다. 윈터는 그들을 구출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윈터는 바이러스를 치료할 백신의 원천 재료를 손에 넣게 되고, 그것을 수의학 박사에게 전달해야 하는 임무도 맡게 된다. 공항과 고속도로가 폐쇄되고 지역 전체가 락다운되는 혼란 속에서 그녀는 무사히 그들을 바깥세상으로 데려오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라인 비트윈:경계 위에 선 자>와 속편인 <라인 비트윈:단 하나의 빛>은 모두 2019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이후 몇 개월 되지 않아 코로나19가 창궐했으니, 두 소설이 소름 끼칠 정도로 예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팬데믹이 우리의 삶을 뒤바꿔 놓는 다는 것이 가상의 예언은 아니라고 작가는 말한다. 언제든 또 다른 팬데믹이 우리의 삶을 침범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코로나19의 시대를 2년째 살고 있지만, 이 소설 속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비밀스러운 사이비 종교는 가상의 단체이지만, 세계 어디에 실재로 존재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으며, 기후 위기는 심각해지고 있고, 바이러스로 인한 집단 감염 역시 여전한 상황이니 말이다. 묵시론적 디스토피아 소설의 이야기가 허구가 아니라 실재라는 자각이 이 작품을 더욱 섬뜩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물론 소설과 현실의 경계선을 뛰어 넘으며 만들어지는 장르적 재미 또한 이 작품을 읽게 만드는 매력이다. 책장을 덮어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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