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방 박노해 사진에세이 4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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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동안 한 인간인 나를 감싸주는 것은 내 작은 방이다. 지친 나를 쉬게 하고 치유하고 성찰하고 사유하면서 하루하루 나를 생성하고 빚어내는 내 작은 방. 우리는 내 작은 방에서 하루의 생을 시작해 내 작은 방으로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고 앞을 내다본다.     p.9

 

팬데믹이 장기화 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외출을 하지 않거나 타인과의 교류가 줄어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덕분에 갈수록 집이란 것이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하거나 잠만 자던 공간이 아니라 '나의 일, 식습관, 생활 패턴, 가치관, 라이프스타일 등을 그대로 담아내는 도구'로서의 역할로 바뀌게 된 것 같다. 세계 곳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어도 안전하게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곳,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평온한 안식을 주는 곳이 바로 집이라는 공간이니 말이다.

 

 

이번에 만난 〈박노해 사진에세이〉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내 작은 방>은 37장의 흑백사진과 글을 통해 '내가 창조하는 하나의 세계'로서의 방에 대해 여러 가지 사유를 보여준다. 그는 서문에서 '지친 나를 쉬게 하고, 치유하고, 성찰하고, 사유하면서 하루하루 나를 생성하고 빚어내는 내 작은 방'이라는 문장으로 근사한 정의를 내린다. 누구나 자신만의 작은 방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정리한다. 좁고, 어둡고, 없는 물건이 많더라도, 혹은 넓고 근사한 물건으로 둘러싸여있더라도, 각각의 방은 자신만의 '은신처이자 전망대'가 되어 준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작은 동굴이 필요하다.
지치고 상처 난 내 영혼이 깃들 수 있는 어둑한 방.
사나운 세계 속에 깊은 숨을 쉴 수 있는 고요한 방.      p.52

 

책을 읽으면서 수록된 사진들이 궁금했다면, 서촌 '라 카페 갤러리'에서 박노해 시인의 <내 작은 방>展이 1월 4일부터 진행될 예정이니 가보면 좋을 것 같다. 라 갤러리의 전시관람은 무료로 진행되고 있다. <내 작은 방>展은 개관 10주년을 맞은 라 카페 갤러리의 20번째 전시로 세계 민초들의 일상과 영혼을 방이라는 삶의 터전에 맞춰 펼쳐낸다. 박노해 시인이 흑백 필름카메라로 기록해온 37점의 작품은 ‘방의 개념’을 드넓은 세계와 깊은 내면으로 확장시키도록 해준다. 글과 사진뿐만 아니라 시인이 엄선한 월드뮤직의 선율까지 어우러져 다른 시공간에 가 있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높고 험준한 안데스의 만년설산 아래 겸손하게 작은 돌집, 혹독한 환경의 아프가니스탄 국경 마을의 흙집,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호의 알혼섬, 라자스탄 사막의 유목민들, 버마의 이라와디 강가에 일용직 노동자들이 짓고 모여 사는 움막, 아시아에서 가장 큰 바다 같은 호수 톤레삽의 뗏목 집, 이스탄불 외곽의 난민 가족이 사는 차가운 단칸방 등 박노해 시인의 지구마을 ‘방’ 순례기는 우리의 일상과 다른 듯 닮아 있다.

 

시인은 오래된 만년필과 낡은 흑백 필름카메라로 인디아, 페루, 에티오피아, 버마, 파키스탄 등 12개 나라의 마을과 방들에 깃든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그리고 박노해 사진에세이 시리즈에는 한글과 영어가 나란히 수록되어 있다. 한글로도, 영어로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페이지들이 구성되어 있다. 한국문학 번역의 독보적인 대가인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가 박노해 시인의 작품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말의 운율과 정서까지 섬세하게 살려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각자의 작은 방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작은 동굴이 필요하다. 거친 세상 속에서 내 한 몸 편히 쉴 수 있는, 지치고 상처 난 내 영혼을 품어 줄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는, 생의 모든 것이 시작되는 각자의 방에서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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