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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 : 젓가락 괴담 경연
미쓰다 신조 외 지음, 이현아 외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평점 :
"저주는 가짜일지 몰라도 저주를 건 사람의 악의는 진짜잖아요?"
이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인간의 악의보다 더 무서운 건 없어요, 후후."
소녀의 동공이 커지고 목소리가 낮고 공허하게 변했다. 물 아래서 들려오는 메아리처럼... 꿈에서만 존재했던, 질식할 것 같은 무거운 압력이 갑자기 현실이 되어 병실 안을 꽉 채웠다. - '저주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 예터우쯔, p.321
초등학교 5학년인 나는 말이 별로 없고 조용한 전학생 네코와 친해진다. 어느 날 네코가 급식을 먹으면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되고, 소원을 이뤄주는 '젓가락님' 의식에 대해 듣게 된다. 식사할 때 젓가락을 밥에 똑바로 꽂는 사잣밥을 만들고 소원을 이야기하는 팔십사 일 동안의 의식을 해야 하고, 젓가락님에게 들키지 않고 내용을 철저히 지키면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는 거였다. 친오빠의 폭력으로 인해 고민하던 나는 소원을 이루기 위한 의식을 거행하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밤마다 이상하고 섬뜩한 꿈을 꾸게 된다. 과연 나는 무사히 의식을 치르고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이 작품은 호러 미스터리의 거장 미쓰다 신조의 <젓가락님>이다.
중학교 3학년 겨울, 반 여학생들 사이에서 젓가락 교환 마법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젓가락 한 짝을 몰래 바꿔 치기 하고, 삼 개월 안에 상대에게 들키지 않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거였다. 전설이나 미신이 크게 유행하던 시기였고, 중학생 시절은 연애에 대한 동경이 가득할 때라 젓가락 마법은 금세 신도들을 끌어 모았다. 나는 이 마법이 뭐가 번거롭고 어려운지 알 수 없다고, 그렇게 해서 사랑이 이뤄진다면 세상에 실연당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겠다고 얘기했고, 친구들은 그래서 연애 한 번 못하는 거라며 나를 공격한다. 덕분에 나는 반에서 가장 인기 없는 남자아이를 대상으로 젓가락 마법에 도전하게 되는데,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 남자아이는 선명한 핏빛의 젓가락을 늘 목에 걸고 다녔고, 굉장히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무사히 젓가락을 바꿔 치기 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타이완의 작가 세시쓰의 <산호 뼈>이다.
"예전에 저주에 관해 말했지만, 도대체 저주가 뭘까요? 사람의 사람에 대한 원한일까요, 아니면 초자연적인 신령이 금기에 저촉한 자에게 내리는 처벌일까요?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주의 본질에는 가닿지 못해요.... 저주는 '개인적'인 게 아니라 시스템적인 것입니다. 시스템에 속하지 않으면 저주에 걸리지 않아요. 우리 아시아인은 젓가락을 밥에 꽂으면 재수가 없다고 말하지만, 서양 사람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회 자체가 거대한 저주의 장치인 겁니다. - '악어 꿈', 샤오샹선, p.479
일본의 미쓰다 신조, 홍콩의 찬호께이, 예터우쯔, 타이완의 쉐시쓰, 샤오샹선, 이렇게 3국을 대표하는 장르문학 대가들이 모여 ‘젓가락 괴담’ 릴레이를 선보인다. 미쓰다 신조가 <젓가락님>으로 포문을 열고, 찬호께이의 <해시노어>로 이야기의 막이 내린다. 다섯 개의 단편은 각각 나라의 지역적인 특색과 전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작가들의 스타일도 조금씩 달라 개별적인 매력을 느끼며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그리고 수록된 순서대로 읽으면 서로 이어지고 어우러지다 하나의 큰 이야기로 완성되는 구성이기도 해서 릴레이 연작 소설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다.
책을 읽다 보면 왜 젓가락일까 하는 의문이 들게 마련이다. 수록된 마지막 작품인 찬호께이의 <해시노어> 편에 젓가락이라는 단어의 다양한 유래가 나온다. 수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젓가락의 유래와 뜻도 매우 흥미로웠고, 관련된 설까지 읽다 보면 왜 주술이 젓가락과 연결이 된 것인지 살짝 짐작이 될 것이다. 터무니 없어 보이는 전설도 있고, 생활과 밀접해 현실적인 설도 있었고, 그 중에서 어떤 것에 마음이 더 끌리는 지는 각자 다를 것이다.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일상에서 매일 같이 보아 왔던 '젓가락'이라는 물건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제대로 읽은 것이 분명하다.
찬호께이는 작가 후기에서 '각 소설은 분명 독립되어 있지만 서로 연결이 되고, 분명 같은 인물인데 조금씩 차이가 난다'고 말하며 어쩌면 이것이 릴레이 소설의 최상의 맛일 수도 있다고 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조화를 이루어 독특한 맛을 내는 다국적 퓨전 요리처럼 말이다. 국가를 막론하고 묘한 미신 또는 터부가 따라붙는 일상적 사물에서 시작해 다섯 작가가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한 괴담의 세계로 지금 당신을 초대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