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 세계적 지성이 전하는 나이듦의 새로운 태도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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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란 이런 것이다. 결말의 임시 생략, 근본적인 불확실성. 삶은 이제 탄생에서 죽음까지 날아가는 화살이 아니라 선율적 지속(앙리 베르그송), 켜켜이 쌓인 시간성의 밀푀유다... 우리는 세월이 멈추기를 바랐다기보다는 그냥 기대도 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다. 늘어난 시간을 즐긴다는 것은 상실을 애도하는 것이다. 인생은 추리소설과 정반대로 진행된다. 결말도 알고, 범인도 알지만, 범인을 저지할 마음은 없다.       p.26~27

 

오래 전에 어떤 드라마를 볼때 이런 장면이 있었다. 우연히 첫사랑 오빠를 만나게 된 여인이 자신의 딸에게 말한다. 참 많이 좋아했던 오빠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반갑기는커녕 서글프더라고. 사람이 늙는다는 것이 참 불쾌하고도 서글픈 일이라고. 얼굴에 진 주름이 서글픈 게 아니라, 이왕 늙을 거면 몸 따라 마음도 같이 늙어야 하는데, 마음은 청춘인데 몸만 늙는 게 서글프다고. 엄마 나이 쉰 둘인데, 그 첫사랑 오빠를 보는 순간 꼭 열 몇 살처럼 느껴졌었다고 말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내가 꼭 나이인 것은 아니라는 것, 실제 내 나이와 스스로 느끼는 내 나이 사이의 간극은 나이를 먹을 수록 점점 더 벌어져 간다는 것이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20대 까지는 한해, 두해 나이를 먹는 것을 체감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30대부터는 숫자에 조금씩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서류에 나이를 기재할 일이 있거나, 누군가 나이를 묻는 상황이 생기면 꼭 나이를 세어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이 책에서  ‘나이듦’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제안한다. 그는 50세 이후, 젊지 않지만 늙지도 않은, 아직은 욕구가 들끓는 중간 시기에 대해 살펴본다. 평균 수명이 길어진 시대를 살고 있지만, 사실 50세가 되면 인생이 정말로 짧아지기 시작한다. 생이 짧아지면 치열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기고, 남아 있는 나날 동안 후회되는 부분을 바로잡거나 잘한 부분을 오래 유지하려고 애쓰게 되기도 한다. 우리가 삶과 맺는 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하지 않은 행동, 하지 않은 말, 내밀지 않은 손. 우리는 어떤 사람을, 큰 타격이 되었을지도 모를 어떤 이야기를 놓쳤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에 상상할수록 망연자실하다. 우리는 기회를 잡지 않았다. 그때 그 자리에서 뭐라도 해야 했다. 두려움, 충격, 수줍음 때문에 우리의 운명이 바뀔 수 없던 순간들을 놓쳤다. 우리 대신 그 기회를 용감하게 잡은 사람들이 원망스럽다. 그토록 심약했던 자기 자신이 용서가 안 된다. 다음에는 절대로 이러지 말아야지.       p.179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황혼은 완성의 시간인가, 또 다른 사춘기인가.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포기, 자리, 루틴, 시간, 욕망, 사랑, 기회, 한계, 죽음, 영원’이라는 10가지 주제를 통해 새로운 황혼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파스칼, 몽테뉴, 프로이트, 니체 등 풍부한 인용과 문학적인 이야기 솜씨로 유려한 사유를 보여준다. 그는 어떠한 호기심도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자기 능력을 시험하라고, 시시한 일상이 우리를 구하게 마련이니 루틴으로 생활의 뼈대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당장 죽을 듯이, 영원히 죽지 않을 듯이 지금을 누리라고, 헛된 희망에 흔들리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해내라고, 일이 내 뜻대로 닥치기를 바라지 말고 늘 최악에 대비하라고 말한다.

 

인간의 평균 수명은 1800년대에 30~35세였는데, 1900년대에는 45~50세가 되었고, 현재는 1년에 세 달 꼴로 수명이 연장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껏 인류사에서 그 누구도 살아본 적 없는 긴 수명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현대인에게 ‘나이’란 이전보다는 덜 절대적인 숫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 나이'는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설명해주고 있을까? 오래 살고 싶다기 보다, 의미 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지만, 어느 순간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현명하고, 충만하게 오늘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기대와 설렘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도록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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