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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와이프
JP 덜레이니 지음, 강경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8월
평점 :
그가 말하는 투에서 이 모든 걸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알 수 있다. '당신, 당신은 일대 혁신이야.' 당신은 그의 인정에 흠뻑 취하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당신에게는 온통 한 가지 소리만 들린다. '너는 괴물이야.'
"어떻게 당신은 이런 나를 사랑할 수 있어?" 당신은 절망적으로 묻는다.
한순간 그의 표정에서 사나운, 분노 같은 것이 번뜩인다. 그러고 나서는 누그러진다. "변화가 생길 때 변하는 사랑은 사앙이 아니다." 그가 인용한다. p.34
언젠가 방송에서 죽은 아내를 그리는 남편이 VR을 통해서 아내를 만나는 장면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던 적이 있다. 4년 전 아내를 잃고 다섯 아이와 남겨진 남편은 현재 구현 가능한 기술로 죽은 아내와 애틋한 '단 하루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그는 가상의 공간에서 아내와 만나 함께 마주보고 눈을 마주치며 손을 잡고 춤을 추었고, 아내와 자주 찾던 숲길을 걸을 수 있었다. 모션캡처 기술을 이용해 배우의 동작과 표정을 3D 모델에 입히는 등의 방법으로 만들어진 실재하지 않는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러니 아마도 사랑했던 대상을 기계의 몸으로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이 정말로 있다면, 죽은 이의 기억과 성격을 고스란히 지닌 인공지능이 진짜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게 만들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얼마나 멋질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는 죽은 아내를 살려내겠다는 남편의 의도가 결코 순수하지 않다는데서 문제가 생긴다.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혁신적인 스타트업의 창립자인 팀은 5년 전 불의의 사고로 죽은 아내를 복제한 로봇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세계 최초로 감성 지능을 지닌 로봇, 코봇이다. 다른 인공지능과는 다르게 공감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이 특별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외형을 빈틈없이 복제하도록 만들어진 코봇은 사별한 뒤 겪는 상실의 고통을 덜어주고, 곁에 있어주며 위로와 정서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작품은 독특한 SF적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테크노스릴러가 아니라 심리 서스펜스 소설이다. 이야기는 남편으로부터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라는 것을 듣게 된 여자 애비게일의 시점으로 전개되고 있다. 기계인 자신은 결코 팀의 진짜 아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애비게일의 절망과 과거에 벌어진 사건의 진실과 남편이 숨기고 있는 비밀들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당신은 아직 살아 있다.
충격적인 일이다. 팀이 믿는 모든 것이 끔찍한 기만 위에 이루어진 것이다. 대니를 혼자 키운 것부터 당신을 복원한 것까지 그가 한 모든 일이 거짓 위에 이루어졌다. 그것도 그가 사랑했던 여자가 저지른 거짓 위에. 자신도 그를 사랑한다고 항상 말했던 그 여자의 거짓 위에. p.274
<더 걸 비포>, <빌리브 미>로 만났던 JP덜레이니의 신작이다. 데뷔작부터 굉장히 세련된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만들어 내는 심리 스릴러로 매우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탄탄한 구성과 독특한 설정, 그리고 우아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페이지마다 흐르는 묘하게 섹시한 분위기까지.. 작품을 읽는 동안 단 한 순간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어 준 이야기였던터라 이후 작품이 나올 때마다 기대하며 챙겨보는 작가이기도 하다.
완벽한 삶에 대한 갈망이 어떻게 극단적인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는 지를 보여주었던 <더 걸 비포>, 살인사건에 휘말려 함정수사에 참여하게 된 배우를 통해 연기와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치명적인 드라마를 그렸던 <빌리브 미>에 이어 이번 작품 <퍼펙트 와이프>에서는 현대 과학의 힘을 빌려 세상을 떠난 사람을 기계의 몸으로 되살리겠다는 남편의 완벽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완벽한 삶과 완벽한 사랑, 그리고 완벽한 아내를 꿈꾸는 한 남자의 로망은 과연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는 것이었을까? 극중 애비게일과 팀에게는 자폐증을 앓는 아들이 있다. 공감하는 기계인 엄마와 공감 능력이 손상된 아들이라는 조합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겨주는 이야기였다. 작가의 후기를 보니 JP덜레이니에게도 자폐증인 아들이 있는 것 같았다.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된 매우 현실적인 통찰들이 작품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인간성,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 준다. 소재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신선한 작품이었다. 비슷비슷한 스릴러 작품들에 지친 당신에게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