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흐르는 곳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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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리건 씨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을 당장, 그리고 죄책감을 느끼며 떠올렸다. 죽은 사람이 이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겠느냐고 속으로 되뇌었다. 호러 만화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다 한들 나는 콕 집어서 케니가 죽길 바란 적은 없고 그저 날 건드리지 말아주길 바랐을 뿐이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장례식 다음 날 우리 모두에게 유산을 남기다니 해리건 씨는 좋은 분이라고 내가 말했을 때 그러곤 부인이 했던 말이 계속 생각났다. '글쎄다. 올곧은 분이긴 했지만 눈 밖에 나면 난처해졌거든.'       -'해리건 씨의 전화기' 중에서, p.102

 

한 중학교에 소포가 하나 배달된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자매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배달된 것처럼 보이는 그것은 사실 폭발물이었다. 폭탄은 1.5킬로미터 멀리 있는 건물의 유리창을 박살 낼 정도로 위력적이었고, 그 폭발로 인해 끔찍한 비극이 벌어진다. 사망자는 학생들을 포함해 31명, 부상자는 73명이었고, 9명이 중상이었다. 탐정사무소 파인더스 키퍼스를 운영하고 있는 홀리 기브니는 뉴스 특보를 통해 사건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연속해서 현장 소식을 전하던 체트 온도스키라는 기자를 보면서 뭔가가 마음에 걸린다고 생각한다. 뭘까? 피곤해 보였던 얼굴? 양손에 남은 긁힌 자국과 벽돌 가루? 찢어진 주머니? 뭔가 알 수 없는 그 위화감의 정체는 이전 작품에서도 본 적 있던 바로 그 '이방인'의 존재와 연결되며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이 책은 스티븐 킹의 중편소설 4편을 수록하고 있다. 특히나 표제작인 <피가 흐르는 곳에>는 <아웃사이더>의 후속편으로 홀리 기브니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빌 호지스가 세상을 떠난 후 파인더스 키퍼스를 맡아서 운영하고 있는 홀리 기브니의 근황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 반가웠다. 역시나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며 오컬트 스릴러로서의 매력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는데, 굉장히 오싹하면서도 시선을 뗄 수 없는 이야기라 숨 죽이고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할아버지와 내가 수집한 살인이나 참사 영상이 수백 편이 더 있어요. 어쩌면 수천 편일지도 몰라요. 뉴스업계에는 이런 말이 있죠. 피가 흐르는 곳에 특종이 있다. 사람들이 끔찍한 뉴스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에요. 살인. 폭파. 교통사고. 지진. 해일. 사람들은 그런 걸 좋아하고 요즘은 휴대전화로 촬영한 동영상이 있기 때문에 더 열렬한 반응을 보여요. 오마르 마틴이 광란극을 벌이고 있었을 때 펄스 내부를 촬영한 보안카메라 영상 있죠? 조회수가 수백만이에요. 수백만."     -'피가 흐르는 곳에' 중에서, p.352

 

작가인 드류 라슨은 단편 소설만 여러 편 발표했는데, 언젠가는 장편소설에 도전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장편을 두 번 시도한 적은 있지만, 주변 사람들 모두를 걱정시켰을 만큼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던 적이 있기에 사실상 포기한 상태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장편 소설을 위한 근사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쩌면 지금까지 생각난 것들을 통틀어 제일 훌륭한 아이디어가 생각난 것이다. 그는 소설 집필을 위해 몇 주간 한적한 시골에 있는 통나무집으로 가서 혼자 작업을 하기로 한다. 처음 며칠 동안은 아침 일찍 일어나 오후 두 시까지 글을 쓰는 루틴을 정확히 지켰다. 자리에 앉으면 단어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동안과는 다르게 원고가 술술 써졌다. 그러다 슬슬 감기 기운이 생겼고, 갑작스레 닥친 태풍으로 인해 오도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고, 원고를 쓰는 것이 어려워진다. 그러던 중 우연히 쥐를 한 마리 구해주게 되고, 자고 일어났더니 그 쥐가 사람처럼 그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스티븐 킹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은 마치 '사악한 동화'처럼 느껴지지만, 소설가로서 '상상력이라는 수수께끼와 그걸 지면으로 옮기는 방법'에 대해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도 묘지에서 죽은 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는 이야기 등 수록된 작품들 모두 다양한 스타일로 스티븐 킹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의 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수록작 모두 영상화 판권이 팔렸다고 하니, 명실공히 '이야기의 제왕'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2020년 여름, 미국에서 출간된 작품이니 스티븐 킹의 가장 최신작이 궁금하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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