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이
로미 하우스만 지음, 송경은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 집에는 전화가 없어요."
"집 주소는? 아니면 집 근처 도로명이라도."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루트 간호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들릴 듯 말 듯 속삭였다. "우린 발각되면 안 되거든요."     p.22

 

스물세 살 대학생 레나는 젊고 활력이 넘쳤다. 어릴 때부터의 꿈인 교사가 되고 싶어 했던 그녀는 길을 가다 마주친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았을 정도로 매력이 있는 학생이었다. 날씬한 몸매에 누구나 인정하는 미인이었던 레나는 어느 날 파티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전 남자 친구를 조사해 봤지만 알리바이가 있었고, 실종과는 무관한 장소에 있던 걸로 밝혀졌다. 납치범으로부터 연락이 오지도 않았고, 일대에서 시신이 발견되지도 않은 채, 14년이 흐른다. 레나의 아버지인 마티아스는 4825일이라는 날짜를 세며 매일같이 경찰을 비난했고, 여전히 레나가 사라진 곳을 향해 차를 몰았다. 레나의 실종 사건을 담당한 오랜 친구 게르트 경감에게 전화해 딸을 찾아 달라고 매달렸고, 언론사 기자들과 적어도 50회 이상 인터뷰를 했다.

 

그렇게 14년이 지난 어느 날, 게르트에게 전화가 온다. 체코 국경 근처 숲에서 젊은 여자가 차에 치이는 교통사고가 발생했는데, 인상착의가 레나와 비슷하다는 거였다. 마티아스는 즉시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의식을 잃고 침상에 누워 있는 환자는 레나가 아니었다. 하지만 실망하는 것도 잠시, 병원 복도에서 어린 시절 레나와 판박이처럼 닮은 소녀를 만나게 된 것이다. 레나를 닮은 아이는 누구일까? 아이는 왜 병상에 누워 있는 여성을 엄마라고 부르는 걸까? 그러다 사고를 당한 여성의 정체가 밝혀진다. 교통사고 피해자는 4개월 전에 실종된 야스민이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4개월 만에 체코 접경지대에 있는 오두막을 탈출했고, 납치범으로부터 학대와 폭력에 시달려 왔다. 이야기는 13세 소녀 한나와 레나의 아버지, 그리고 레나와 야스민의 1인칭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뒷좌석에서 레나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룸미러로 레나의 금발 머리가 시작되는 부위와 반짝이는 눈이 보이는 듯했다.
"아빠가 나를 찾아주어야 해요."
나는 목이 메어 겨우 대답했다. "그래, 아빠가 널 찾아낼 거야."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널 반드시 찾아낼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p.388

 

숲속 오두막에는 납치범과 열세 살 소녀 한나, 열한 살 남동생 요나단, 그리고 납치되어온 여자가 있다. 아이들은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며 납치범을 '아빠'라고 부른다. 집에는 전화도 없었고, 창문도 열 수 없었으며, 집 안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들이 있었다. 창문을 열면 위험하다고 나무판자로 막아두었기 때문에, 집에는 별도의 공기순환기가 있었다. 게다가 납치범은 납치되어온 여성을 '레나'라고 불렀는데, 사실 그녀는 레나가 아니라 야스민이었다. 대체 자신을 왜 '레나'라고 부르는지, 왜 자신이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이 남자의 아내가 되어야 하는 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렇게 4개월이 흐른 것이다. 그리고 야스민은 납치범의 머리를 가격하고 달아나다 교통사고를 당했고, 납치범이 죽었으니 이 사건은 종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야스민은 살아 돌아왔지만, 14년 전에 사라진 레나는 아직 실종상태였다. 과연 레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며, 납치범의 정체는 누구일까. 사건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긴장감 있게 흘러간다.

 

이 책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독일 작가 로미 하우스만의 데뷔작으로 <쾰른 크라임 어워드 2019> 수상작이다. 작가는 뮌헨의 TV방속 제작 회사에서 편집국장으로 일하며 성폭행 당한 여성들, 소말리아 전쟁 난민들, 학대 받는 아동 등 100여 명을 인터뷰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집필했다고 한다. 하지만 첫 소설이 나오기까지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간 횟수가 무려 스물다섯 번이었고,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 출판을 하고, <슈피겔>지 집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된다. 제바스티안 피체크, 안드레아스 빙켈만, 넬레 노이하우스, 안드레아스 그루버 등 탄탄한 이야기로 사랑 받은 작가들의 뒤를 이어 독일 스릴러 장르의 명맥을 이어갈지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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